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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34-40 “두 길”
하나님은 말씀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는 그들에게 광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순종함으로 가나안을 볼 것이며, 또 그들과 후손에게는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 회고를 통하여 구속사의 (두 길)을 보여주십니다. 34-38절
하나님은 두 길을 보여주십니다. 모두 함께 출애굽 1세대로 출발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나머지 출애굽 1세대의 신앙의 두 길을 대조시켜 보게 하십니다. 이 때만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두 길, 믿음 생활의 두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좇아 산 자와 사람과 세상을 쫓아 산 자의 길입니다(창 12:4). 하나님은 두 모습, 두 길을 통해서 무엇을 따라가야 할 지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배려입니다. 우리가 부름 받고 신앙생활을 해도 워드(Word) 시스템을 따라 살 수도 있고, 월드(World) 시스템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 것이냐? 세상을 따라 살 것이냐? 입니다. 모든 삶의 현장 속에 이 두 질서가 항상 깔려 있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아브라함과 그 약속의 자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약속대로 번성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따라 간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모압과 암몬은 나라가 세워졌지만, 후대에 하나님의 구속사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세상을 따르고 즐길 것인가?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인가? 보이는 안목의 정욕을 따를 것인가? 환경을 볼 것인가? 약속을 믿을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상황과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순종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는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묻고 나아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그러나 너희의 (아이들)과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너희의 자녀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39절
출애굽 때 아이들과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그들의 자녀들은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어린 아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의 아이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녀들이라고 하는 것은 출애굽 당시 1세대는 20세 이상을 계수하였고, 출애굽 이후에 20세 미만의 아이들은 성장했기 때문에 단지 아이로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마 18:1-3). ‘아이’가 갖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철저하게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을 배우는 현장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40년을 훈련 시켰던 것은 순종의 훈련이었습니다(신 1:33).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바로 순종을 훈련시키는 역사였습니다. 절대로 그 대열에서 벗어나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따라가는 길이 40년이었습니다. 순종을 배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순종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면 지금 우리 모든 삶은 가나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나안에 이미 들어 와 있습니다. 훈련받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서 가나안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나안에 살면서 광야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나라가 도래하였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얻고, 이 땅에서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있으면서도 광야에 사는 것처럼 살기 때문에 가나안을 살지만, 가나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순종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