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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6:1-3, 7-11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는 삶은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삶입니다. 기억을 따라가는 삶도 아니고, 상황을 따라가는 삶도 아닌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삶입니다.
1. 고린도 교회 교인 중 다른 이와 다툼이 있을 때 구태여 불의한 자들에게 (고발)하느냐고 도전합니다. 1
불의한 자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상 법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소송의 문제는 믿음의 가족끼리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 공동체 안에서 또는 교회는 다르지만 믿음의 사람들끼리 입니다. 그러나 오해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세상 사람과의 문제가 생기면 법정에 갈 수 있습니다. 권리 보호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 너희 중에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성도끼리 이익과 손해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때 구태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 법정에서 판단 받으려고 해야하겠느냐고 되묻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이 더 상위법인데, 믿음의 사람끼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할 수 없어서 세상 법의 판결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세상의 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만들고 모욕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족해서 세상 법을 더 우위에 두는 행동을 하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공동체라고 부른다는 것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인데, 세상 법보다 더 큰 법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더 하위법인 세상 법을 의지해서 불의한 자들에게 판결을 받으려고 하는 성도에게 오히려 질문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그럼에도불구하고 세상 법정으로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손해 보기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하면 손해 볼 것 같으니까, 내가 양보해야 될 것 같으니까 이익을 보장받으려고 법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의 문제를 송사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세상을 향한 모범을 잃어버립니다(마5:38-41). 예수님의 이야기는 손해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고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려면 손해를 적극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요5:24-25). 영생이 보장되어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정말 영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작은 손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세상으로 가서 송사해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2.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이미 뚜렷한 (허물)이 되는데,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낮지 아니하냐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7
송사를 하면 누가 이기고 지고 상관없이 이미 우리에게 허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1) 송사를 하므로 사랑해야 할 형제를 정죄하는 죄 2) 송사로 형제를 세상 법 앞에서 죄인이라고 선포하는 죄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게 하려고 십자가에 죽어 죄 없다고 죄를 씻어 주셨는데, 우리는 형제를 죄인이라고 선포하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평 하라고 하셨는데 싸우는 것도 죄이고, 밖으로 나가서 형제를 죄인이라고 고발한 것도 죄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믿지 않은 자에게 판단 받지 말고 성도와 함께, 믿음의 공동체에서 같이 해결해야 합니다(롬12:5, 엡4:4).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예수님을 따라 손해를 적극적으로 보는 삶입니다.
3.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9-10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는 음행하고, 간음하고, 탐색하고, 남색하고, 탐욕을 부리고 속이고 빼앗고 살아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손해 보지 않으려고 송사하고 양보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양보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실제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양보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 즉 삼위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룩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것도 역시 죄라는 것입니다. 내 이익을 지키려고 사랑해야 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면 그것도 똑같은 죄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