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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1-8 “거듭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요일 5:13).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롬 6:23). 그래서 사도 요한도 복음서를 쓰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영생입니다(요 5:15).
1.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증거가 뭐에요? 거듭남입니다. 반드시 거듭남이 있어야 합니다. 1-3절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성경도 잘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종교 지도자라서 이목 때문에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랍비여 하고 (선생님)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믿어지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영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며 그 영생의 조건은 거듭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종교적 열심은 있었고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지켜 행했지만, 그래서 도덕성은 남들보다 휼륭할지 모르지만 거듭나지 않은 까닭에 예수님을 보고도 누구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종교인인가? 거듭난 사람인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거듭남이 있는가? 나는 중생 했는가? 나는 정말 성령의 의해 다시 태어났는가? 기독교 신앙은 개선이 아니라 거듭남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새로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답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영생에 대한 믿음도 없고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거듭나야 들리고 믿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남(헬, 아노덴)은 ‘다시’, ‘처음부터’, ‘위에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다’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5절
성령에 의해서 새로워지고 물로 증거를 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예수와 함께 나를 살리고 일으키며 하늘에 앉히게 하는 것입니다(엡 2:5-6). 혈통도 인간의 어떤 노력도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그 증거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이자 선민이고 율법을 잘 지키는 율법학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을 보지 못하고 믿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거듭남이 없어서 보지 못한 것입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은 육에 속한 지(知), 정(情), 의(意)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바로 하나님나라가 믿어지고 보이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바로 하나님나라를 보고 경험하고 참여하고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1:1-4).
3. 거듭나야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제 거듭남의 비밀을 바람으로 설명합니다. 8절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획 하는 소리를 통해서 그리고 바람의 흔들림을 통해서 바람이 있다고 알 수 있습니다. 결과를 통해서요. 거듭남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행동을 보고, 결과를 보고 거듭남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삶의 변화를 통해서 ‘저 사람은 거듭났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은 이전의 죄악된 습관을 버리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산다는 것입니다(갈 5:22-23, 25-26). 미래적인 영생을 소유하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 영생의 시작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예수님의 표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믿음으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표적을 보지 않아도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했습니다.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예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인해 믿게 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입술을 통해 고백하며 하나님께 거듭난 자로서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믿음의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