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거룩한 삶의 여정, 속죄제'

박정수 목사 / '레 4:27-31'

dot01.png

본문

레4:27-31 거룩한 삶의 여정, 속죄제
르네상스 3대 거장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에 그의 어머니였던 마리아에게 안겨있는 모습을 상상해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은 그 이전까지의 다른 피에타들과 비교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비해 마리아의 몸이 너무 거대해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이에 대해 자신은 이 피에타를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청중이나 관중이 보는 관점은 작가의 관점과 다를 수 있으며, 우리가 가진 시각과 관점 역시 때때로 하나님의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하나님은 왜 레위기를 주셨을까? 왜 제사를 명령하셨을까?

1. 속죄제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 였다. (과거)
모든 제사들은 각각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가진 공통점은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평온케하여, 죄인을 향한 노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레4: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j"/jynI Aj'yrl)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죄인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제사가 드려지면, 하나님의 마음이 평온해지신다. 즉 심판이 면제되고, 용서가 임한다. 그러므로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많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그런 심판을 면제 받고 싶으면 부지런히 제사를 드려야 했다.

2. 속죄제(제사)는 (예 배)로 완성되었다. (현재)
출40:33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출40:33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40:33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거쳐 성막이 완성되었지만, 모세는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에서 그 성막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유는 여호와의 임재가 성막에 충만했기 때문이다. 레위기 9장은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하나님 앞에 주어진 제의율법대로 제사가 드려진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함에도, 드디어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있었다.

3. 속죄제는 내게 (예수님의 생명)을 부여한다 (미래)
히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히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제사를 집례하셨다. 그 제사는 바로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그때부터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이 한 번의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고, 영원한 심판과 멸망의 운명으로부터 건져냄, 즉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속죄제를 통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용서, 그리스도의 생명, 축복과 은혜에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의로 살 수 있도록 결단하자.

“주님,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겠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삶을 살겠습니다. 선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