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세계에도 원칙이 있듯이 영적 세계에도 영적 원리가 있다. 영적원리를 따라 살아야 영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영적원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기독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초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십자가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축복의 통로였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심-속죄양되시고, 광야로 내 몰린 아사셀 양 되심
레 16:9-10 “아론은 여화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이스라엘은 대속죄일에 두 마리의 염소를 바친다. 이는 곧 대속의 죄짐을 진 주님의 모습이다. 한 마리는 성막에서 속죄의 제물로 지성소에 드리고, 한 마리는 아사셀로 광야에 버려지게 된다. 우리의 죄와 저주의 문제를 짊어지고 심판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습이다. 아사셀양은 홀로 광야에 버림받고 죽어가면서 고통의 울음소리를 낸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버림받으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철저한 침묵과 외면, 저주의 아픔을 당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러한 고통은 우리들이 받아야 할 저주와 아픔을 주님이 홀로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아들로 보시지 않고 죄인 중의 괴수로 보시고 심판하셨다. 주님은 내 대신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나는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사 53:5-6) 양에게 안수함으로 죄가 전가되듯이 우리는 회개할 때 나의 죄와 저주가 예수님께로 전가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구리뱀이 되심-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산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불순종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의 지시로 모세가 세운 구리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기적적으로 다 고침을 받고 살아났다.(민 21장) 이 구리뱀은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이다. 오늘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지만 에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믿음은 기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앰블런스에 있는 막대위의 뱀그림은 모세의 구리뱀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병고침의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만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병까지 짊어지셨따.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십자가는 관념이 아니다. 매일 우리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주님의 능력이다.
3.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심-구원의 출발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와 애굽의 권세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하다. 그들이 지나가야 할 광야는 너무나 척박하여 양식도 물도 없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출애굽할 수 있었는가?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모든 위기도 양식도 물의 문제도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이다. 애굽을 떠날 수 있는 원리가 어디에 있는가? 바로를 이길 수 있는 힘의 원리가 어디에 있는가? 광야를 극복할 수 있는 원리가 어디에 있는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데 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경험하게 된다.
4. 예수님은 새로운 열린문이 되심-십자가는 찢어진 휘장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하나님의 임재 처소를 의미하는 지성소를 드리우고 있던 휘장은 분명 하나님과 인간의 죄로 인한 단절과 불완전한 교제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휘장이 찢어짐은 대속제물이신 예수의 찢겨진 육체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상징한다. 이로써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의 이 대속의 죽음을 의지하고 담대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달라진 인생, 변화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