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수난자의 믿음

박승호 목사 / 시 10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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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이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신 ‘영혼구원의 참된 의미’를 진지 하게 되새겨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그리고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헤아려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환경지향적 인간(Other-orientation)
외적 조건에 의하여 지배되고 주도되고 종속되어 가는 즉, 환경에 따라 지배되는 사람
자신이 그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 한다. 자기가 지금 이미 습관화 되고, 문화화 되고, 상품화 되고 체질화까지 돼있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지를 모른다. 행•불행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환경에서 즉, 내 안이 아닌 바깥에서 찾는다. 모든 삶의 출발이 밖에 있다. 통치의 중심, 본부, 통제본부가 환경에 있기 때문에 밖에서 모든 것이 조종된다. 되는 대로 말하고 남이 말한 대로 믿고, 삶의 행•불행이 밖에서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된다. 다른 사람이 원인이다. 누가 칭찬해 주면 힘이 솟아오르고 조금 어려운 말을 들으면 그날로 기가 팍 죽어버리고 만다. 기쁨도 슬픔도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항상 남에게서 빌려온다. 칭찬을 들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말을 하지만 비판이나 미움을 받으면 미워한다. 완전히 주변환경에 따라서 좌우되고 종속되고 끌려가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환경이 있고 사람이 있다.
이를 인지심리학에서는 ‘동조성의 인간’ 즉, 남의 인정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집중하지 않고 환경을, 사람을 집중한다.
②경험지향적 인간(Self-orientation)
자기가 기준이 되고 자기가 중심이 되고 자기에 의해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자기가 주도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자기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다. 그래서 자기경험, 자기 지식이 자기를 주도한다. 자신의 눈, 가치관, 자신의 느낌이 가치의 중심이다. 내 맘에 들면 좋은 사람이고 내 맘에 안 들면 나쁜 사람이다. 그들은 다 내 말을 들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자기가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이 중심이 되고 있다. 내 능력, 지식, 경험, 판단에 집착한다. 그래서 나의 생각으로 사람들을 주도하고 끌고 간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성의 인간’-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집중하지 않고 자신을 집중한다.
③신앙지향적 인간(Faith-orientation) → 구속사 지향적 인간
모든 것을 신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생각하는, 구속사적 즉,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
‘틀림없이 어떤 뜻이 있을 것이다’라며 신앙중심, 구속사 중심으로 사고하고 그렇게 살려고 애쓴다. 어떤 사건, 어떤 사람과의 관계, 어떤 경험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 즉, 구속사 지향적 사고를 가진 하나님을 집중하는 사람으로 구속사를 써 가는 사람이다.

본문
시편 107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매우 단조로우면서도 잘 짜여진 시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이 시는 같은 내용의 말씀으로 여러 번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반복 : 부르짖음 – 6절, 13절, 19절, 28절
두 번째 반복 : 하나님께서 도우심 : 8절, 15절, 21절, 31절
이 반복을 자세히 살펴 보면 환란이 있은 다음에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나오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나오고 그 마음에 감사가 나오는 방식으로 32절까지 네 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오늘의 본문이 들어 있는 4절~32절에서는 ‘고난과 구원의 관계’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고난, ㉡기도와 그 결과 그리고 ㉢감사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1.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
1) 광야, 사막과 같은 환경 [시 107:4~5]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 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4절~5절]
배경은 광야, 사막이다. 시야에 들어 오는 전경은 어디에나 모래 밖에 없다. 나무도 풀도 식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배고파 허기져 있고 갈증으로 인해 속이 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헤매었다. 그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 이 첫번째 장면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표현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생활 시대에 역시 그들이 거주지를 잃고 타국에서 이방신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을 받고 살았다. 이 시의 표현대로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 당하던 한 시대였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영혼이 피곤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영혼이 피곤하였다는 말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조차도 힘들었다는 말이다.
끝 없는 피곤, 대책 없는 고난의 연속, 황량한 환경 바로 이런 삶이었다. 너무 피곤하여 지쳐있고, 쉴 곳을 찾지 못해 살아있는 것 조차도 힘에 겨운 상황이다.
2) 모든 것에 제한을 받는 감옥 같은 상황 [시 107: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0절]
사방을 보아도 희망이 없고 어두움 뿐이다. 곤고와 매여 있는 것 뿐이다. 쇠사슬은 감옥을 말한다. 감옥은 자유가 없고 모든 것 - 건강• 경제• 자녀•대인관계 등 - 이 묶여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빠져 들어간 원인은 언약의 백성으로서 언약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1절] 즉, 하나님과 코드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죽을 지경에 이른 상황 [시 107:17~18]]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서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7~18절]
이는 죽기 직전의 상태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절망적 상태로 입맛이 없고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음식물 조차도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4) 풍랑이는 바다의 상황 [시 107:23~27]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3~27절]
이는 뱃사람들이 배를 가지고 바다에서 영업하고 있는데 큰 풍랑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모든 인생이 그 생활터전에서 예기치 않는 풍랑이 불어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특별한 원인이 없다. 단지 25절에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하셨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경을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죄가 없어도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는 방편으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도전하는 방편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시는 바,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기도와 구원의 손길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시편의 시인은 이때에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다고 말한다. [시 107:6절, 13절, 19절, 28절]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져내시고” [6절]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3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 [19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8절]
여기서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라는 기도는 네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 후렴구이다.
왜 부르짖어야 되는가?
㉠어린아이의 의존성, ㉡간절함 – 집중력, ㉢전적인 순종 – 결단
→ 이 기도의 결과, 여호와께서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다.
성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해 주시는가? → [7절, 14절, 20절, 29~30절]
문제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하게 됨.
3. 감사, 간증의 삶 (결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답 → 찬송, 간증 그리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라”
→ 8절, 15절, 21절, 31절 말씀의 후렴구임
고난은 우리를 잘 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와 인격 자체가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죄악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사의 시적 구조를 볼 때 신자의 구원에는 환란→기도→구원→감사 의 사이클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고난을 주신 의도가 무엇인가?

1) 기도가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회개하라 ㉡자기를 내려 놓으라 ㉢하나님께 사이클을 맞추라 ㉣그의 말씀하심에 순종하라
하루 한 시간을 작정하라.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지속되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107:19~20]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어 상한 심령을 고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찍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의 능력과 치료의 능력이 있다.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이다. 원칙이 있는 삶, 목표가 분명한 삶을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사람, 상황을 따라 산다. 약속도 마음의 기준도 없다. 환난의 바람이 불면 다 날아가 버린다. 규범이 있는 삶을 위해 1년 1독 이상의 성경 읽기를 계획하고 성경을 공부하자. “사탄은 우리 둘레에 울타리를 쳐놓고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방해할 는지는 모르나 우리 위에 지붕을 씌우고 우리가 위를 쳐다보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다”고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은 말하였다.
3) 감사, 예배를 놓치지 말자
은혜 받은 자, 구원 받은 자,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자는 감사와 예배로 귀착된다. 불평 원망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간계이다. 이 믿음, 신뢰의 마음을 가졌다면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그 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환난, 기도, 구원, 감사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목적이 확고한 인생, 감사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자. 앞으로 다가 올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구속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