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

박승호 목사 /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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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회포착에 능한 사람이 되라 – 만사엔 때가 있고 기회가 있다

남자가 청혼을 하는 것이 관례인 시대에 칸트로부터의 청혼을 기다리다 지친 어느 여성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칸트는 “잘 생각해 보겠다”고 정중하게 대답을 하고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 오랜 기간 심사숙고 하였다. 이윽고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칸트는 멋지게 옷을 차려 입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으나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돌아 온 대답은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 후 칸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다.
이 예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살아날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쳐 버리면 우리네 인생은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조건이 바뀌고 환경적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 즉,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은혜는 열려있으나 나의 마음 속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내면 안에 하나님의 답이 들어있다. 다만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


1. 저주의 도시 여리고에 사는 사람과 천국을 사는 사람 [막 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46절]
그 옛날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떠나 가나안 내륙으로 진격할 때 여리고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4~5백년 후 이 곳에 대한 여호수아의 저주가 성취됨. [수 6:26], [왕상 16:34]
예수님 당시에도 여리고는 저주 받은 도시로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음

들음은 믿음을 가져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우리의 현실은 좋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좋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말씀은 여과(filtering)기능이 있다. 고난이 없는 가정은 없다. 고난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후의 축복으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므로 기회포착을 잘 하여야 한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메시지)가 들려온다.
㉠ 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찌어다”
[막 5:29~30]
㉡ 구걸하던 소경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들음으로 그의 생애에 놀라운 변화가 왔다.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 기적을 체험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으로 일생을 살았다.

예) 덴마크의 부흥
덴마크라고 하면 지금은 누구나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부유한 나라로 떠올리지만 그룬트비가 살던 19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와의 전쟁에서 패해 막대한 보상금과 함께 유럽 북부 곡창지대까지 넘겨주고 남겨진 스칸디나비아 땅은 북해와 발트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리고 돌과 모래,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였다. 전쟁에 져서 보화도 권력도 땅도 그리고 여자들까지도 모조리 빼앗긴 이 처참하게 버림받은 덴마크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었고 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다. 이 절망과 어두운 땅에 한 사람 - 그룬트비 목사 - 이 등장하여 3애(三愛)운동을 일으킨다. 그룬트비가 내세운 3애정신 –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 – 은 곧 덴마크의 구호가 돼었고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1783년 덴마크 우드비에서 태어나 현재‘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그룬트비(Nikolai F. Grundtvig)는 ‘국민의 의식구조가 개혁되어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힘이 아니라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외치며 국민의식 개조운동과 농촌부흥 운동을 벌여 나라 전체를 바꿈으로써 오늘날의 선진 낙농국가인 덴마크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의식개혁 즉, ‘우리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산다.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 아무리 좋은 것을 물려주어도 하나님을 떠나면 안되고 아무리 비극과 절망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사는 것이다. 저주는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좌절하며 생각이 부정적이고 공부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신은 더욱 중요하다. 내 안에 모든 원인과 답이 있다.
믿음이란? → 환경을 극복하는 힘이다. [고후 4:8~10]
우겨 쌈이 우리를 삼킬 수 없고 답답한 일이 사람들을 완전한 절망의 포로로 볼모 잡을 수 없으며 핍박이 그리스도인들을 망하게 할 수 없다.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2. 길 가에 있는 사람과 기도 응답자 [막 10:47~51]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섬생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7절~51절]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축복을 받으려면 그분이 즐겨 다니시는 곳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신다.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소경 두 사람이 예수님께서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소리지르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길 가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서 축복을 받으려면 예수님이 잘 다니시는 곳에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잘 다니시는 곳, 그러한 모임, 그러한 예배 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말씀에 나오는 맹인은 현재의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다. 이후로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지나 가셨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 없다. 다음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절박하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 집중해서 잘 듣고, 찬양과 기도할 때도 마음을 다하여 하고 졸거나 다른 잡념에 싸여서는 안 된다. 그 소경들에게 가장 큰 행운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소리 지를 때 그 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 예수님께서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계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자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 [시 145:18]

겉옷을 벗어 던지는 행위
기회와 절박한 상황에서는 이런 결단을 요구할 때가 있다. 즉, 기회포착에는 모든 것을 거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교제하는 기도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위기의 기도는 전념하여 주님께만 매달리는 부르짖는 기도여야 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마 20:30~31] 비록 세상이 보기에 하찮은 소경에 불과했으나 이들에게는 왕을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서는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한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10:19~20]

믿음이란? → 기도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마14:30,31]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 빠진 이유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한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 쓰신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간절히 기도했다.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히스기야, 여호사밧 모두 다 그 당시 놀라운 큰 일을 한 사람들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위기를 맞은 사람들의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로 소리를 질러 애원하였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세를 보고 계신다.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이다.


3. 평생 거지로 살 사람과 왕을 따르는 사람 [막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52절]
그들은 평생 사람을 기대하며 살았다. 자신들의 힘든 문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만나 그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에게만 도움을 요청햇으면 평생을 거지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만났을 때 평생의 문제가 해결된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이다.

구걸과 기도의 차이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길가에서 늘 구걸하던 불쌍한 소경 두 사람이 삶의 변화를 겪고 난 후 예수를 쫓게 된다.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따라감으로써 에수님의 추종자 즉, 제자가 되었다.
우리들은 삶의 자리가 변화되고 있는가? 예수를 믿고 나서 무엇이 달라졋는가?

예) 고재봉의 회심
1963년 10월에 일어난 끔찍한 도끼살인 사건(6명 사망)의 범인인 고재봉이 당시 대한성서공인회의 전도인 일을 하고 있던 분으로부터 전도를 받는 중에 요한복음의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외아들 예수님을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장 16절] – 에 감화를 받고 구원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전도인으로부터 받은 성경을 읽고 주님을 영접하고 그 후 사형될 때까지 무려 1800여 명의 죄수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감방 전도인’으로 변신했다.
예수님을 만나면 지나온 삶이 잘못 살아왔던 것을 알게 된다.
삶의 목적이 달라진다. 그리고 예수를 좇는 삶을 산다.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 고난 – 기도 – 코드 맞춤 – 동역자(기도)
모든 인생의 아픔, 행복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구속사에 쓰시기 위함이다.
바디매오는 보게 된 후에 즉시 예수님을 좇아갔다. 마음과 생각이 늘 거지근성에 시달렸을 바디매오는 자기 문제가 치유되고 나니까 삶이 변화되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 즉, 살리는 능력인 것이다.
예수님 만난 사람들의 특징은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그분이 좋아서 따르고, 그분을 본받기 위해서 따른다. 쓰임 받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