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박승호 목사 / 겔 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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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겔 37:1~14] 박승호목사


인생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먹는 즐거움’이다. 식보(食補)는 축복이다.
주님의 구속사에는 먹는 예화가 많이 나온다

1. 창조의 질서
1) 에덴동산에서
에덴동산에 사람을 지으신 후 사람이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생명수와 생명수 강물을 두었다.[창 2:9~10]
2) 죄로 인한 상실
타락이란 먹어야 할 양식(영생의 양식 즉, 말씀)을 먹지 못 하는 것이다.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음. [창 3:22~24]
3) 완전한 회복
회복된 생명수나무와 생명수 강물
구속사는 하나님이신 말씀(양식)을 먹지 못 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과정이다.[계 22:1~2]

2. 구원의 성장과 음식의 차이
구원은 완성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비실비실하는 것은 양식을 먹지 못한 탓이다.
1) 애굽에서의 양식
애굽에서 먹은 양식은 제한된 양식이었다. 유월절에 먹은 음식은 양고기, 무교병(누룩을 넣은 인생을 살지 말라는 의미) 그리고 쓴 나물(인생의 쓰디 쓴 고난을 의미)이었다.[출 12:3~4, 8]
2) 광야에서의 양식
광야에서의 양식은 만나(이것이 무엇이냐?)였다. 지금까지는 바로(Parao)가 주는 음식을 먹었으나 이제부터는 하늘이 내려주시는 양식인 만나를 먹게 된다. 애굽에서 먹은 것(무교병, 쓴 나물)은 쓰고 맛이 없었으나 만나는 달고 맛이 있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구원 이후 가장 어려운 것이다. [출 17:5~6]
3) 가나안에서의 양식
구원의 성장은 ‘무엇을 먹고 사느냐?’에 달려있다. 애굽에서는 ‘척박한 음식’을, 광야에서는 ‘매일 새로운 음식(만나)’을, 그리고 가나안에서는 ‘젖과 꿀’을 먹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인생은 부요한 인생이다. 축복은 내가 애써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고 계신다. [신 8:7~10]

3. 성찬식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게 하시려고 성찬식을 예비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고전 11:24~25]
광야에는 양식이 없었고 물이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으로 저희를 따르시는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음료를 공급하셨다. 그들은 땅에서가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40년을 살았다. 어느날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 주님은 스스로를‘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요 6:54~55, 6:48~ 51]
우리가 주님을 먹고 마시면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성품이 되신다. [요 7:37~39]


본문상황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70년의 세월 동안 노예로, 종으로 착취와 상실 속에 살았음.
이제 그들을 회복하기 위해서 에스겔 선지자를 사용하심.


1. 먹어라 [1절~3절]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기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 3:1~3]
먼저 사역하기 전에 두루마기를 먹게 하셨다. 배에 넣고 창자에 채우는 작업을 미리 하셨다
그것이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 그리고는 절망의 땅으로 데리고 가셨다.

2. 말씀을 대언(對言)하라 [4절]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 3:4]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시 119:20]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함으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 119:131]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우리 마음과 생각에는 이 세상 가치관, 인생관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풍조에 휩쓸리게 된다. 우리 생각과 마음에 이런 것들이 청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져야 한다. 그러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를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여 준다.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마른 땅이 비를 구하듯이 말씀을 사모해 보시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태도로 말씀을 대하면, 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겠는가?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호 8:12]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이다" [시 107:9]

3. 생기를 대언하라 [9절]
"또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 3:9]
생기가 누구인가?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기요 하나님의 호흡이다. 기도하는 시간,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마음에 성령이 오신다. 예배 가운데 오신다. 사역 가운데 오신다.
결국 먹고 마심이 부실해져서 그들이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결국은 포로 된 상태로 빠져 모든 자유와 권리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말한다. 먹고 마셔라. 기본이 회복되면 모든 것이 다 회복된다. 주님은 우리가 그 분을 먹고 마심으로, 그 분으로 인하여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먹고 마신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 경배, 봉사한다는 의식이 있지 그분을 먹고 마신다는 개념이 없다.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하라. 사역은 일 중심이 아니라 말씀 공급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