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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39-49 “부활의 증거”
샬롬! 해피 이스터!
부활의 아침이다. 우리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약속해 주셨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1. 또 로 말씀하시되. 39절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을 여전히 못 알아들어 혼란스럽고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딴 길로 가려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아니 내가 어떻게 저렇게 살아!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우리가 어떻게 비판하지 않고 살고 정죄하지 않을 수 있지? 어떻게 보복도 안하고 살지? 주린 자는 배부를 것이라 했는데 나는 여전히 배고프고, 우는 자는 웃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삶이 왜 고통스러운 거지?’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혼란스럽고 자신 없는 마음들로 가득했다.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더 이해가 안 가겠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 무리들 속에서 같이 듣고 자기들의 제자를 얻기 위해서, 아직 이해가 안가고 혼란스러워하고 자신 없어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거는 안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복음의 수혜를 입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고 책임지시는데,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없다고 말하는 맹인 스승을 따라가는 삶을 살면 결국 온전해져 봐야 맹인 스승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2.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한다. 41절
‘티’는 나무 조각이고, ‘들보’는 건물에 석가래로 쓰이는 커다란 나무이다. 들보를 가진 바리새인과 서기관 너희들이 앞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들의 티를 빼 주겠다고 현혹시켜 따라가게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너희 자체가 들보 같은 죄로 가로막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데 뭘 가르치겠다고 티를 빼 주겠다고 하냐는 것이다. 동시에 제자들에게도 말씀 하시는 것은 자기 들보 때문에 앞도 볼 수 없는 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말하는 것을 따라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고 동시에 반문한다. 예수님은 내 가르침이 아닌 저들의 가르침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티가 있어도 그 티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티가 있는 거 알고 부르셨고, 그 티는 예수님을 따라오다 보면 해결되고 제자로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3. (부활의 증거)를 경험하지 못하면 흔들린다.
예수님의 12사도인 제자들도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 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다 뿔뿔이 흩어지고 도망갔다. 베드로는 예수님 제자냐는 질문에 3번씩이나 펄쩍 뛰면서 부인했다. 그러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약속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디베랴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고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경험한 그 이후부터 실제적인 제자로서의 삶을 산다. 제자들은 부활의 증거를 갖기 전에는 12사도가 같이 있었어도 흩어졌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다음에는 흩어져 혼자 있어도 12명이 있는 것처럼 사명을 감당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고 부활을 경험한 사람이 갖게 되는 능력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배우고 훈련 받아서가 아니라, 배우고 훈련 받은 자가 부활을 경험하게 될 때 그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제자로서 산다는 것이다. 부활을 경험한 제자와 부활을 경험하지 않은 제자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