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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6
눅 8:22-23, 26-28, 40-44 “달리다 쿰”
1. 큰 광풍을 (잠잠하게) 하시는 사건 22-25절
이 하루는 씨 뿌리는 비유를 마친 후, 그날 저녁 해질 무렵이다. 그런데 광풍이 호수로 내리쳐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롭게 되었다. 갈릴리 호수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갑작스런 돌풍이 종종 있다. 제자들 중에는 어부들도 있었지만 감당이 안 되고 물이 가득하여 위태롭게 되니 그제서야 예수님을 깨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의미적으로 해석하면 ‘너희는 지금 너희와 함께 한 내가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런 뜻이 된다. 나를 경험하고 함께 했으면 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하는 내가 누구인지 좀 알라는 것이다. 어떤 것은 해결하고, 어떤 것은 해결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광풍과 같은 문제가 닥치면 이 문제를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이 있는 것인가? 제자들과 똑같이 자기 방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서야 예수님을 깨워 ‘주여 주여’ 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씨 뿌린 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씨 뿌린 자는 능치 못 할 일이 없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히11:6, 약1:6-8). 광풍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믿음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2. 거라사인 지방에서 귀신을 (쫓아낸) 사건 26-27절
팔레스타인은 바위가 많아 동굴도 많다. 동굴이 많다 보니까 무덤으로 많이 쓰인다. 거라사인은 이방인의 땅으로 그 도시에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옷을 입지 않고 집에서 살지도 않은 채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예수님께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한다. 예수님이 이미 귀신을 만나면서 명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귀신은 예수님에게 간구하기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한다. 마귀는 자기가 마지막으로 가야할 장소를 알기 때문이다. 마침 그 곳에 돼지 떼가 있어서 차라리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는데, 그 돼지 떼는 비탈로 내리 달려 호수로 들어가 몰사한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 들린 그 한 사람을 구하려고 2000마리나 되는 엄청난 재산상의 손해를 감수한다. 천하보다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에게 한 사람이 귀한가? 아니면 2000마리 돼지가 귀한가? 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돼지 2000마리가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가서 거두겠다고 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뿌린 씨는 그 밭의 상태가 어떠할지라도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찾아가서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3. 12년 동안 혈루병 가진 여인을 (고친) 사건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 40-44절
예수님이 거라사인에서 돌아 왔을 때,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다. 그의 딸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시면 죽어가는 딸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빨리 가야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자가 나타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12년간 피가 계속 나온다면 이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심정과 몹시도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예수님이 지금 손 댄 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가?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천대 받고 격리 받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의 병 나음을 선포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붙드는 자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 여인과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당신의 딸이 죽었다고 전하니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어가는 자는 살릴지 몰라도 죽은 자는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한다. 믿는 자의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잔다고 한다. 언제든지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 달리다 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