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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36-50 “바리새인과 한 여인”
1. 바리새인 시몬은 왜 예수님을 (초청)하고, 예수님은 왜 그 (초청)에 응대했을까? 36-37절
이 초청은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 무엇인가 배우려고 초대한 것이 아니라 악의적이다. 복음에 대한 도전이나 하나님나라에 대한 도전이 아닌 마치 관용이 있는 사람처럼 예수님을 초청하지만 치졸하고 교만한 초청이다. 유대인들은 손님이 집에 오면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는 결례 항아리를 준비해 손님을 상석에 앉히고 하인이 발을 씻어 주거나 최소한 씻을 수 있도록 물을 준다. 그리고 환영의 입맞춤으로 인사한다. 또한 뜨거운 태양 아래에 걸어 다님으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감람유를 머리에 부어준다. 붓는 것은 당연하고, 이 감람유는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값도 비싸지 않고 일반적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여인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 뒤로 가 그 발 곁에 서서 울다가,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는다. 이 여인은 왜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어 자기 전부를 드리는 표로 예수님을 환영하고 접대 했을까?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용서하시고 해결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이미 믿고 그렇게 행한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며 죄를 사하신다는 소리를 그 여인은 들었고,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비천한 존재도 무시하지 않고 만나 주실 것이고, 반드시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용서함을 받았다는 선언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마음을 이미 아셨고, 바리새인들의 마음 또한 이미 아신 것이다.
2. (속으로) 생각하는 바리새인 시몬에게 예수님은 말씀한다. 40-43절
빚진 자가 둘이 있다. 그런데 둘 다 빚이 많든지 적든지 갚을 길이 없어서 탕감해 주었다. 빚의 비유는 죄를 비유할 때 사용한다. 갚을 길이 없어 탕감해 주었다고 하는 것은 죄의 문제는 탕감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이다. 그래서 빚의 비유는 항상 어떻게 갚았다는 이야기는 없고 탕감 받았다고만 나온다. 예수님은 무엇을 해서 용서받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탕감받는 것임을 여인을 통해 보여주고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교만한 바리새인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알려주기 위해 그 바리새인 집에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가신 것이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면 용서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도 용서함 받은 것 같이 용서하라고, 탕감 받은 것 같이 탕감하라는 것이다. 용서 받은 자에게 있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의무이다(마6:12).
3. 그리고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에게 한 번 더 질문한다. 42-43절
둘 다 탕감해 주었는데 누가 더 그(탕감해 준 자)를 사랑하겠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시몬은 많이 탕감 받은 자라고 했고, 예수님은 그 대답이 옳다고 한다. 더 많이 탕감 받았기 때문에, 아니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빚을 탕감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 많음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빚을 이야기 할 때 일만 달란트, 오백 데나리온, 오십 데나리온 이라는 것은 죄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이나 죄를 인지하고 있는지의 차이이다. 여인은 예수님이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를 용서받음이 감사하여 벅찬 감동으로 그녀의 전 삶을 드린 것이다. 그 믿음이 행동으로 나온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복음을 들을 때 비로소 회개하게 되어, 헌신하고 순종하게 되며 섬기게 된다. 신앙의 모든 과정을 이 여인의 행동으로 다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한다. 이 여인처럼 늘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은혜 갚기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