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오직 십자가

김병진 목사 / 눅 23: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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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35-45 “오직 십자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6)

 

1.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향하여 비난합니다. 35-37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예수님을 향하여 백성들은 구경하고 관리들은 비웃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신포도주를 주며 네가 그리스도라면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합니다. 네가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는 것은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로마 군인들이 무엇을 안다고 이렇게 덩달아 대제사장과 서기관, 관리들처럼 예수님을 비난할까요?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대제사장과 관리들과 서기관들에게 보고 배운 것입니다.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무시하고 희롱하고 조롱하는 것을 보고 로마 군인들도 똑같이 예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행동과 입술의 말 때문에 세상이 그 말을 받아서 예수 믿는 자들을 비난하고 교회를 향하여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비난하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조롱거리를 내어 주고 비난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분쟁의 모습이 그들에게 조롱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행악자)의 고백입니다. 39-42

둘 다 행악자이고, 둘 다 유대인입니다. 둘 다 예수님에 대하여 들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온 유대가 떠들썩했었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라고, 메시아라고, 구원자라 부르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 소리 지르고 종려나무 가지 흔들고 겉옷을 길에 깔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한 행악자는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냐 그렇다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며 비난합니다. 왜 비난할까요? 기대가 없어진 것입니다. 메시야를 통한 변혁이 일어나지 않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입니다. 홀딱 벗김을 당하고 조롱당하면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정 짓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삶에서의 번영과 축복을 가져다줄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3:20-21). 그런데 다른 행악자는 예수님의 죄 없음을 수긍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죄 없음을 인정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죄가 없을 수 없잖아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나라, 당신의 나라 속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합니다. 피투성이의 초라한 모습, 남들은 조롱할 때 그 예수를 향하여 소망을 품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안 해 주신다고 해도 십자가 하나만으로 예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5:24, 요일5:11-1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구원이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악자입니다.

 

3. 예수님이 죽으시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44-45

성소의 휘장은 15cm 이상 한 뼘 정도의 두께입니다(10:19-20). 예수님의 몸을 찢어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찢어져야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기 전 유월절 밤이 있었습니다. 어린양의 죽음이 없이 홍해를 건너지 못합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넌다는 어린양의 죽음이 생명의 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찢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지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할까요?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찢어 새로운 살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께 모든 가치관과 모든 인생의 허락된 시간을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