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십자가를 지고

김병진 목사 / 눅 23: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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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26-34 “십자가를 지고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그들이 고소하는 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사형시키기로 언도하고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갑니다.

 

1.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26

그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으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지쳐 있는 예수님을 위해서요. 예수님은 구속사를 위하여 끝까지 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골고다로 가는 길에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진 것은 우연일까요? 지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누가 져야 할까요? 제자들이 져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장면은 눅9:23의 말씀을 성취하는 장면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 길은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입니다. 시몬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하나님을 기억하고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기념하고 또 유월절을 기념한 자로 살기로 결단했기 때문에 그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모습으로 사용되어 진 것입니다(15:21).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문은 구속사에 기록되고 기억되었습니다.

 

2.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27-28

가슴을 치며 예수님을 따르는 여자의 무리들은 예수님께 고침과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던 자들일 것입니다. 아무 힘이 없어서 사형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예수님을 위해 울며 슬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구속사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을 가지만 저 사람들은 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죄악을 행하고 있으니 그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가올 재앙에 대한 현실적 이해로 AD70년에 훼파될 예루살렘성의 함락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장차 닥쳐올 종말적 징계를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닥쳐올 환난과 재앙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에 대한 강력한 고발이기도 합니다. 푸른 나무인 예수님은 의인인데도 이와 같이 고통스러운데, 하물며 마른 나무인 악인과 죄인은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까지도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용서받고 돌아오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3. 두 행학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갑니다. 32-33

행악자는 자기들의 죄로 인해서 징계를 받는 자입니다. 십자가에 처형받을 만한 어떤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과 수치를 겪으셨습니다(19:23-24). 십자가에서 가장 큰 고통은 아픔도 있었지만, 더 큰 고통은 수치와 모욕입니다. 우리가 뒤집어써야 할 수치와 모욕, 아픔을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복음서는 놀랍게도 십자가에 어떤 부사나 수식어를 쓰지 않고 정말 담백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라고 기록했습니다(23:33, 27:35, 15:24, 19:18). 십자가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를 빼고는 다른 것으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그 큰 사랑 속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십자가가 십자가 되는 복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백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