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역전의 역전

김병진 목사 / 삿 1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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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6:20-25 “역전의 역전

 

1. 삼손은 힘이 없어졌는데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20

삼손은 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에 힘을 잃어버렸는데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큰 문제였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영이 떠났는데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힘으로 생각해서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서 하나님이 주신 힘이 없어졌는데도 자기의 능력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전히 알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지명하여 구별된 나실인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삶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육적인 충동의 삶을 산 것입니다. 지금 삼손의 힘을 누가 뺀 것인가요? 하나님은 힘을 빼서라도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삼손이 힘을 잃어버린 이 상태도 하나님의 은혜가 삼손에게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삼손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세우시려고 힘을 뺀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은혜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에 의한 상황 배열을 생각하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계속 가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14). 우리도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 스스로가 만든 수많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멸시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가 타락의 길로 들어서면 불신자 보다도 더 비참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불신자들보다 높은 도덕적 수준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에 상응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기에 이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2:12). 예수 안에서 부르신 사랑과 은혜는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상응하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8:35, 39). 멈추게 할 때는 멈추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돌이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눈을 빼고 놋 줄로 매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21

비참하게 된 삼손의 모습을 봅니다. 삼손에게 눈을 빼고 밧줄도 아닌 놋 줄로 묶어 움직일 때마다 살이 패이게 하고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당시 큰 맷돌은 가축을 사용해서 돌렸습니다. 삼손이 힘이 셀 때는 몰라도 지금은 힘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짐승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겠습니까? 이것이 특권을 상실한 자의 모습입니다. 삼손은 이전의 교만한 상황에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겸손해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겸손해진 것입니다. 이제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누가 보일까요?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 회개의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삼손이 얼마나 울었을까요?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바울이 사울일 때 교만했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의 제자로 힘이 창창할 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형제를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선봉장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눈을 안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상황을 배열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예수를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은 그를 멈추게 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시간이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께 돌아간 그 시간에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의 머리를 자라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다시 이스라엘 구원을 시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삼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3.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나를 강하게 하사 사명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합니다. 25, 27-28

삼손이 기둥을 붙잡고 이제야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삼손은 보일 때는 하나님을 찾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거룩히 구별된 나실인이었지만, 자기의 정욕을 위해서 살았고, 사사로 부름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 거룩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아도나이)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며,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라는 고백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 이번만 강하게 하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나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온 삼손은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부르짖었습니다(4:16). 삼손은 다 잃어버렸어도 이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소망을 갖습니다(1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