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삼손의 착각

김병진 목사 / 삿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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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6:1-9 “삼손의 착각

 

1. (삼손)이 블레셋의 가사로 가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갑니다. 1

가사는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가사는 항구도시로 블레셋의 최남단에 있는 상업도시로 굉장히 화려하고 번성한 도시입니다. 삼손은 딤나에서 60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도시까지 왜 왔을까요? 레히에서 1,000명을 죽이고 난 후 자기 힘을 더 의지하게 되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혼자의 몸으로 블레셋 적국을 맘대로 휘젓고 다녔고, 자기 한 사람을 블레셋이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블레셋은 삼손이 나타나면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그런 중에 삼손이 가사로 가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삼손은 다시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악이며, 더욱이 사사로서, 나실인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또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풍조가 문란했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아무도 안하는데 삼손만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했기에 삼손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블레셋이 알고 정면대결은 안되겠지만, 기습 공격을 한다면 승산이 있지 않겠나 하고 그 여관을 매복해서 에워싸고선 새벽이 되면 깊이 잠든 삼손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서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갔습니다. 삼손이 왜 성 문짝과 문설주와 빗장들을 유다 헤브론에 갖다 놓았을까요? 성문은 국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뽑아 뜯어다가 유다 땅 앞에 갖다 놓았다는 것은 너희는 이스라엘에게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삼손이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묻고 하나님의 사사답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삼손은 힘이 있다고 교만해 가지고 자기 맘대로 합니다(41:11, 11:35, 고전 15:10).

 

2. 이 후에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4-5

삼손이 또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기생에 이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들릴라(음탕하다, 연약하다)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삼손을 없애려고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은 1,100개를 주겠다고 하면서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려 달라고 한 것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지만 여자는 삼손을 사랑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큰 돈을 벌기 위해서 삼손을 배반하고 그들과 약속합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힘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지 묻지만, 삼손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딤나에서 수수께끼 답을 여자에게 가르쳐 주었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손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자리를 떠나야 마땅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들릴라를 가까이 합니다. 이토록 죄의 유혹은 현명한 판단력을 상실하게 합니다. 들릴라와 삼손은 계속 서로 거짓말을 하면서 서로를 희롱하고 서로를 불행하게 합니다. 들릴라는 세 번을 속으니까 이제는 돈도 돈이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기가 죽게 생긴 것입니다. 들릴라가 재촉하여 날마다 조르니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했습니다. ‘번뇌하다’(/ 카챠르)괴롭다’, ‘마음이 찢어지다라는 뜻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사사로서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면 이 여자를 떠났어야 합니다. 결국 삼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붙잡지 못하고 인간의 욕망과 욕정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나를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우리의 들릴라는 무엇이 있습니까? 삼손은 사자를 찢어 죽일 만큼 강했지만 사랑의 유혹에는 약했고, 일천명 블레셋인을 나귀 턱뼈로 죽었지만 삼손은 사랑이라는 올무에 메였습니다(8:8-9,12-14; 5:8-10).

 

3.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힘의 근원)은 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7-19

삼손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사가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나실인 서약을 어겼음에도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에 그에게 은혜와 은사를 베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두 개는 이행하지 않아도 하나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지금 나실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셨고 우리를 먼저 의인이라고 칭의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삼손처럼 6일은 내 마음대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다가 하루 주일날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것으로 내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예수님은 주일날 한 시간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자격을 주려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죽으셨을까요?(3:13,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