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에브라임의 길

김병진 목사 / 삿 12:1-3,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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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1-3, 7-10 “에브라임의 길

 

1.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긴 입다에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와서 입다와 입다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합니다. 1

입다는 요단 동편에 있는데 요단 서편에 사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와서 입다와 입다의 집을 불사르고 징벌하겠다고 합니다. 입다와 에브라임의 전쟁에서 죽은 에브라임의 군사가 42,000명이라고 하는 것은 에브라임이 형제를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모아 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암몬과 싸울 때에 에브라임 지파를 불러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기드온이 미디안에게 대승을 거두었을 때에도 기드온에게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에브라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크게 다투었습니다(8:1). 전에도, 지금도 형제가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았으면서 승리하게 되면 승리의 영광에서 소외시킨 것에 대하여 비난하고 꾸짖은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에브라임 지파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드온도, 길르앗 사람 입다도 므낫세 지파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살려낸 장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두 몫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각각 한 기업씩을 주었습니다. 야곱이 축복 기도할 때에 요셉이 야곱에게 손이 바뀌었다고 했는데도 야곱은 나도 안다 하면서 그대로 오른손을 둘째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얻고 장자의 축복을 준 것입니다(48:10,17,19). 에브라임은 차자였지만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한 지파, 한 사람이 우월감을 갖는 것은 공동체 전체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태어난 서열로는 므낫세가 형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이 장자의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야곱 또한 에서가 형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처럼 에브라임도 자차가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면 이것은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25:21-23). 그런데 에브라임은 어떤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의 자리, 그 칭찬의 자리에 자기 몫이 있느냐 없느냐를 중요하게 여겼고, 자기 몫이 없다면 화를 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난과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 받은 것,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 것을 안다면 겸손하게 감사해야 할 일이지 형제를 비판해도 되는 자리로 부름받은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같은 사람 중, 같은 죄인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죄가 적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인데, 이 믿음까지도 은혜로 받아서 그 은혜로 받은 믿음이 우리로 믿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8). 에브라임에 임한 은혜는 겸손과 감사해야 할 일이지 형제를 비판하고 비난하라는 자리가 아닙니다. 은혜로 부름받은 우리는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들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납하고 사랑 안에서 화목한 것이지, 완벽 안에서 화목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2:2-4). 은혜로 부름받은 사람은 에브라임의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기 위해 협력하고 부족함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멸시나 비방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6:45, 12:15).

 

2. 사사 입다가 죽고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7-8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에게는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절이 평온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내고, 아들들을 위해서는 밖에서 여자를 데리고 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지파 안에서 결혼을 했는데, 이는 신앙의 보존과 지파의 땅과 재산을 지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딸들의 정략결혼을 이용해 평화를 유지하려 하고 밖에서 여자를 데리고 옴으로 재산을 늘리고자 하였지만, 아들들이 여자를 데리고 올 때 재산도 가지고 오지만 여자가 섬기던 우상도 같이 가지고 들어 올 수 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사사로서 해야 할 일일까요? 하나님의 사람으로도 이스라엘 백성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것을 사사의 신분으로서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평안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나타내라고 평안을 주었는데 오히려 신앙의 혼란을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왜 주셨습니까? 하나님만 예배하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땅도 주시고 평안도 주신 것입니다(19:6). 왜 우리에게 예수 안에서 지금의 은혜를 주셨을까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나타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라고 평안과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벧전 2:9, 5:9-10). 평화를 주신 것은 우리 맘대로 살아 보라고,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 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고, 평안하면 하나님을 나타내고 살아야 되는 것이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이유입니다(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