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영문 밖에서

김병진 목사 / 히 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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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3:9-16 “영문 밖에서

 

1.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흔들리지 말고 끌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려가지 말고,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예수를 구원 주라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힘이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로마의 식민치하에서 특히 황제숭배 사상으로 인한 핍박과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경제활동이 어렵고 유대 동족으로부터 배척을 당했기 때문에 다시 예전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도 다른 교훈을 가지고 현혹하는 이단들이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다른 교훈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끌려가게 하는 다른 교리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무서운 다른 교훈은 특히 율법주의입니다. 자기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리입니다. 내가 무엇인가 그래도 드려야 구원도 받고 복을 얻는다고 하는 교리는 자기 공로를 내세우게 하므로 은혜의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율법을 다시 이행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옛 언약으로 돌아가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하게 하시려고 예수의 피로 속량하였는데 다시 죄의 멍에를 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예수님의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히 그래서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을 위해서 행위가 필요하다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오직 죄인의 구원은 예수의 피로 받는 것이고 오직 예수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온전하신 예수님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십니다(1:6-7, 2:8, 4:12, 1:17).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감격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나 내가 예배드렸기 때문에, 내가 헌금했기 때문에 나의 구원을 확신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2. 예수님은 왜 (영문 밖에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는가? 11-12

구약에서는 대속죄일에 대속의 피인, 짐승의 피만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고 짐승의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살랐습니다(16:27). 그 짐승의 육체는 철저하게 버려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대속의 피는 하나님이 받으셨고, 그 육체는 영문 밖, 성문 밖에서 버려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영문 밖은 거룩한 영역이 아닌 버려진 장소, 소외된 장소, 낙오된 장소, 수치로 얼룩지고 가망이 없고 소망이 없는 사망 권세가 놓여져 있는 곳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육체가 그 곳에 버려져 고난 속에 속죄 제물된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짐승의 육체처럼 영문 밖에서 수치의 땅에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육체가 되어 죄 가운데 들어오셔서 저주를 받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3:13). 거룩하신 예수님이 최저의 바닥으로 버려지고 수치를 당하신 것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율법 아래에서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입니다. 고아에서 아들로, 거절에서 용납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어 주시려고 거룩한 하늘 성소를 버리고 수치로 얼룩진 성문 밖으로 골고다 언덕으로 버려진 것입니다(요일 4:10).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예배를 몇 번 했나? 내가 십일조를 했나? 성경을 몇 독 했나? 그 행위를 자랑하고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율법주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 영문 밖에서 나의 수치를 짊어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제 율법주의 제단을 버리고 십자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자랑하고 은혜를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리,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낮은 자리, 십자가의 자리 영문 밖으로 나아가서 십자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 십자가를 만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장막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그곳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3. 우리는 복음이 감사해서 음식의 제사, 제물의 제사가 아닌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5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온전히 열납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 예수를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찬양의 제사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찬송의 옷을 주셨기 때문입니다(61:3, 69:30-31). 그러므로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리면서 꼭 같이 드려야 하는 제사는?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행과 나눔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행위를 동반한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과 행함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 자는 이웃을 향하여 선한 말을 하며 이웃의 필요를 돌아보아 나의 것을 나눌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