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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3-9 이스르엘
1. 첫째 아들은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3-4절
첫째 아들 이스르엘의 이름의 뜻은? ‘흩으신다.’ 결국 이스라엘이 흩어져서 망한다. 멸망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흩어지게 해서라도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깰 만큼, 흩어지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할 이유는, 무엇이 하나님을 그토록 진노하게 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자기 욕망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고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고, 그날에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활을 꺾는다고 하는 것은 군사력을 잃게 해서 흩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하도 우상 숭배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마구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아합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엘리사 때 실제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셨습니다(왕상21:17-24, 왕하9:1-8). 그런데 예후가 아합 집안을 멸절하면서, 하나님은 분명히 아합 집안을 심판하려고 했는데 예후는 유다의 왕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 42명을 모두 다 죽였습니다(왕하9:27, 왕하10:13-14). 하나님은 아합을 심판하기 위해서 예후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워 명예도 주셨습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아합 집안만을 멸절해야 했는데 자기의 욕망을 이루려고 유다 왕과 그의 형제 42명을 다 죽인 것입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명분 삼아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말아야 할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예후가 그렇게 하게 된 동기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왕하10:28-31). 그가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긴 했지만 그가 진정 섬긴 것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긴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겨 자기 영광을 누리려고 하나님을 명분 삼아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한 사람입니다. 금송아지는 자기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는 우상입니다. 금송아지처럼 스스로 높아지고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기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야망을 성취하려는 동기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아합을 죽인 것도 아하시야를 죽인 것도 자기 욕망을 성취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흩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욕망을 이루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는 하지만 그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고 믿는 척하고, 따르는 척하고, 순종하는 척하면서 하나 같이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심지어 우상까지 섬기더라는 거예요. 우리는 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감사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내가 구원받은 자로 살려고 예배하고 공동체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나님 전에 들락거리는 것이 신물이 나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흩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기가 지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흩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삶의 방편에 유익을 얻으려고 믿는 척하고 순종하는 척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엉큼하다는 것입니다. 육체적 음란도 싫지만 하나님 앞에 영적인 음란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음란을 크게 생각하고 영적인 음란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땅에 살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각각 바알과 금송아지 등을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기들의 우상 삼고 형식적으로 성전을 들락거린 것입니다. 바알을 더 의지하고 금송아지를 더 의지하고 하나님도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불러 모은 당신의 백성을 흩으시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도, 예배도, 교회에서 사역하는 모든 사역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의 은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나타나는 두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1번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랑과 두려움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사랑하기에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냥 사랑만 하면 만만해지거든요. 사랑함으로 두려워하는 마음 이것을 ‘경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