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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6-9 로루하마
1. 첫째 아이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그 뜻은 '흩으시다', '멸망시키겠다'는 뜻입니다.
2. 둘째 아이의 이름인 로루하마입니다. 6절
둘째는 딸인데 그 이름이 ‘로루하마’, 그 뜻이 무시무시합니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동정하지 않겠다.', '다시는 은총을 입지 못하게 하겠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셋째는 아들로 그 이름이 로암미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지자 호세아,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자에게 그 아이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분했겠어요? 눈물이 났겠어요? 하나님이 이런 무시무시한 이름을 지으면서 화가 났을까요? 애통함에 눈물이 났을까요? 애통했을 것입니다.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지키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강화시켜서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용사 기드온의 전쟁 때도 일부러 이스라엘의 군사를 돌려보냅니다. 너희들의 승리가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삿 7:2-7, 8:10, 7:16, 20). 하나님은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이스라엘에게 보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순종할 때는 대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대적을 일으켜서라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언약”을 지키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 동정하지 않겠다,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악행은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알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고, 아세라 상을 섬기고, 금송아지를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은 뒷전이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하찮게 여긴 것입니다. 우상과 겸하여 하나님도 섬긴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몸은 성막과 성전을 들락거렸지만, 마음은 다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몸은 성전에 한 번씩 와주고 우상 앞으로도 성큼성큼 나아가 절도 하며 섬긴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이루려고 했던 것입니다(요일 2:16).
여러분 질문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정말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을 멀리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시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고 싶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아름다운 삶,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주고 싶어 하십니다. 잠깐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을 주고 싶어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삶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잠깐 사는 인생을 나름대로 누리며 살고 싶어서 영생을 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상은 자꾸 인생을 주목하게 합니다. 사실 주지도 못하면서 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니까 징계해서라도 주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해 내는 삶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름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갈 자니까, 갈 자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마 4:4).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불러낸 당신의 백성은 하나님이 빚어서 담아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발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고전 15:19-2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레 11:45, 벧전 1:15-16). 하나님은 거룩을 향해 가는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13-14). 빛과 소금의 빛은 자기를 태워야 빛을 낼 수 있고, 소금은 자기를 녹여서 형체가 없어져야 짠맛을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태우고, 너희를 사라지게 만들어서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가 되고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