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처음 교회의 모델

박승호 목사 / 행2: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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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난주일 설교요약
「처음 교회의 모습 」
행2:40-47 박승호 목사


사도들이 아직 살아있던 초대교회에도 문제는 있었다. 이단의 문제, 구제의 문제, 당파의 문제 등 초대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하여 교회 또한 대처의 노력을 해왔다.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교회가 타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있는 건강한 생명체에도 병균이 침투하듯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늘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침투한다. 생명체가 자정능력을 가지듯 교회 역시 교회에 침투하는 대적을 퇴치하려는 생명자체의 운동이 있어왔다. 그래서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더 부각되어 보이지만, 그것 역시 교회가 교회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시대마다 침투해온 이단 사설과 사조로 인해 교회의 권위가 도전을 받기도 했다.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성경의 절대성은 학문의 한 영역으로 밀려나는 분위기였고 그 영향으로 교회는 성장이 침체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거기에 교회는 교회대로 부흥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되면서 여러 방법론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무엇이 진정한 부흥이냐 하는 물음을 묻게 된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건강한 교회,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을 초대교회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Ⅰ. 교회의 원형은 무엇인가?
1)교회는 가족이다.
[엡2:19]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낯선 나그네나 손님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늘의 시민이요 가족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호칭할 때 형제, 자매라 불렀다. 형제라는 말은 아버지가 같다는 말이다. 한 아버지의 자녀인 형제, 자매는 가족이다. 하나님의 가족.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가족은 서로를 돌아보면서 서로에게서 힘을 얻는다. 교회는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서로를 모르고 살아서는 안된다.
2)예수님의 몸이다.(행9:4-5)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고 몸은 분리할 수 없다. 사울이 기독교인을 핍박하여 살해하고자 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과 예수님 자신을 분리하지 않으신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다.
3)교회는 유기체이다.(겔37:7-8)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바꿀 수 없다. 유기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에스겔서의 말씀에 마른 뼈가 연결되고 말씀을 대언하므로 생기가 그 속에 들어가서 살아 움직이는 큰 군대가 된다. 이것은 장차 나타날 온전한 교회에 대한 환상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대언하는 일과 성령의 활동이 있어야 온전한 교회가 된다.
4)교회는 작은 셀로 출발하였다.(행12:12, 행16:19, 골4:15, 몬1:2)
4세기 까지 교회는 건물이 없었다. 사제제도도 없었다. 오늘과 같은 예배순서도 없었다. 예배처소는 가정이었다.
Ⅱ. 교회의 변질
313년에 콘스탄틴에 의해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그로 인해 기독교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점점 세속화 되어 갔다. 본래적 교회의 능력을 상실한 채 변형된 모습은 다음과 같다.
①사람들은 특정한 건물에만 간다(대성당)
②한 주간 중 특별한 날에만 교회에 간다.
③특정인(사제)만 그들에게 종교행위를 한다(설교, 가르침, 성찬식, 치유) 그 결과 교회가 점점 세속화되어 감으로 인해 교회는 약화되고 변질되어 갔다. 그래서 중세의 교회는 개혁을 해야 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가져온 유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개혁이 사제들의 손안에만 머물던 성경을 모든 성도들에게 돌려준 운동이었다.
둘째, 종교개혁은 사제들 안에만 머물던 사역을 모든 성도들에게 돌려주는 운동이 될 것이다.

Ⅲ. 온전한 교회의 그림
행2:42절“...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온전한 교회는 독수리의 두 날개처럼 한쪽 날개에는 예배가 있고 한쪽 날개에는 셀이 있다. 모든 교인들이 함께 한 마음으로 공적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예배공동체가 한쪽 날개라면 다른 한 날개는 셀(소그룹/가정교회)로 모여서 서로를 돌아보며 교제하고 양육하는 것이 반대편 날개이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맞추어야 교회는 바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

Ⅳ. 소그룹의 장점
나폴레옹은 55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겨우 2만명의 패잔병을 수습하여 돌아갔다. 히틀러도 60개 사단을 투입하여 러시아 국경을 넘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러시아 군대가 꼼짝 못하고 무릎을 꿇은 군대가 있다. 바로 몽고의 징기스칸군대였다. 승리의 비결은 소그룹 형태의 지휘체계에 있었다. 징기스칸 군대는 어떤 지휘관도 10명 이상을 거느리자 않았다. 최고의 지휘관인 징기스칸 자신도 10명만 지휘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휘체계를 일사분란하게 만듦으로 병사들의 통솔력을 증대시켰고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높인 것이다.

Ⅴ. 소그룹의 역사
소그룹은 현대적인 발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의 창조와 구원, 그리고 에수님의 사역과 초대교회 사역에 기초하고 있는 개념이다. 소그룹의 사역은 성경적이며 신학적으로 정당한 개념이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세분으로 계신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 둘째, 천지창조 후에 최초의 소그룹은 아담과 하와로 구성된 에덴동산의 공동체이다. 삼위 하나님이 소그룹의 원형이라면 가정은 인간사회에서 소그룹의 원형이다. 범죄 후에 세상에 죄가 만연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소그룹(공동체)을 통하여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셨다. 여덟명으로 구성된 노아의 가족을 사용하셔서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셨다. 셋째, 예수님의 12제자 역시 소그룹이다. 예수님은 열두제자를 택하시고, 훈련시키셔서 지도자로 삼으셨다. 이 12명의 제자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다.(막3:13-14) 넷째, 가정에서 모인 초대교회가 소그룹이다.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였다. 소그룹은 각자 서로를 섬기며 자신들의 영적 은사를 사용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로 훈련되기에 좋은 크기였다. 당시 소그룹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복음전도가 이루어지는 생명력 있는 교회이다. 다섯째, 팀사역으로 전도한 바울 역시 소그룹의 팀을 이루어 선교를 감당하였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의 소그룹의 위치는 선택적 기관이 아니며 교회의 기본구조로써 영적인 경험과 개인과 교회의 본질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한다. 소그룹은 복음의 가장 기본적 본질 중 하나인 풍성한 영적 교제를 경험하게 하는 구조이다.
건강한 교회는 예배와 소그룹이라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며, 주중에는 소그룹을 통하여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한다. 건강한 교회는 예배자와 사역자로 훈련시킨다. 따라서 예배가 살아야 하고 소그룹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소그룹이 살아야 예배가 산다. 마귀는 이 두 날개를 함께 날지 못하도록 공격하고 있다. 예배는 드리게 하되 소그룹의 역동을 빼앗아 갔다. 우리 시대의 개인주의는 함께 교제하는 소그룹의 활동을 막는 큰 적이다. 예배의 영광을 회복하고 서로를 돌보며 치유하는 소그룹에 참여하여 사탄을 공격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우리는 두 날개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