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아파트에 사는 일가족 세 사람이 세 사람이 싸우다가 홧김에 고층아파트를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유를 알고 보니 아버지는 제비족, 어머니는 날라리,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의 세태를 풍자한 유모어이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문제가정이 늘고 있다. 가정의 위기라고들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중독현상은 심각하다.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원인을 가정에서 찾아야 한다. 부모의 양육태도에 따라 자녀의 성격이나 행동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살피고 위기의 가정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으로 세우는 길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얻도록 하자.
Ⅰ. 크게 되기를 원하는 부모의 욕심
[막9:33-34]“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오늘의 본문은 제자들이 서로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주장한 사건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제자들의 이런 싸움 전에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의 청탁이 먼저 있었다. 요한과 야고보는 그 어머니의 욕심을 그대로 전수받아 그 후에 직접 예수님께 주께서 영광중에 나라를 다스리실 때 하나는 좌의정 하나는 우의정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적이 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서로 큰 자리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누가 더 크냐하는 것은 크다고 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갈망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가 잘되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지나쳐서 부모의 욕심을 자녀를 통해서 이루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심각하게 자녀의 성격을 왜곡시키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된다.
특히 부모의 양육태도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이 두 가지이다. 첫째, 자녀를 뒤에서 조종하는 경우이고 둘째, 과보호 하는 경우이다. 자녀가 부모에 의해서 조종된 경우,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거나 선택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어서 책임을 느끼지 못하며 자기 의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성취감이 없다.
부모의 욕심으로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졸업한 한 자녀가 졸업장을 어머니에게 주고는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는 사례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과보호하는 부모에 의해 성장한 자녀의 경우, 극히 의존적이고 소극적이며 자기중심적이 된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도 끊임없이 배우자를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할 경우 분노하며 자신이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점은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가 알아야 할 중요한 자식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며 진정한 자녀사랑은 바른 지식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Ⅱ. 내 이름으로 자녀를 영접하라
[막9:36-37]“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세계적인 석학이나 과학자 중에도 어릴 때 정서불안 내지 교육 불가능자로 판단받았던 사람들도 많다. 에디슨이 그랬고 아인슈타인, 헬렌켈러 등이 그런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의 눈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도 어린아이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해 주시고 계신다. 어른들에게 있어서 어린아이는 귀찮은 존재였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봐야 한다. 있는 모습그대로 봐주는 눈, 존재지향적인 시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이의 개성을 인정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능성을 발견하여 성장시킬 수 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하던 막달라 마리아를 있는 그대로 받으셨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의 인생은 변하여 부활의 첫증인이 되었다. 우리는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 나왔던 102세의 소아과 전문의 레일라 덴마크 박사의 일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은 일이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놀이입니다”
Ⅲ. 중독으로 가는 길
모든 어린아이는 적어도 성장 초기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 한다. 부모나 보호자들이 편견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이 없이는 진정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부모가 필요하다. 이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아이의 욕구는 의존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먼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음으로써 다른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중독의 원인은 이러한 기본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오는 질병이다. 중독의 정의는 하고 안하고 할 수 있는 의지가 본인 안에서 작동되지 않는 상태이다. 끌려가며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경우를 말한다. 중독은 어린 시절 심겨진 씨앗으로부터 자란다. 외롭고, 슬프고, 두렵고, 화가 난다고 말할 때 누군가 당신에게 “뭔가 좀 먹고 기분을 전화해 보는 것이 어떻겠니?” “근사하게 한 잔 하고 나면 좀 나아질 거야” 라는 말을 쉽게 접한다. 이것은 감정적 스트레스를 물질로 관리하라는 유혹이다. 초기의 감정적 도피가 습관이 되어 결국 중독이 된다. 중독자의 심리상태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 때문에 감정적인 대체물을 찾게 된다. 이들은 철저히 정서적으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산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아이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칭찬하며 자기 의사를 개진하는 것을 무조건 통제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의 장점을 인정하고 격려함으로써 정서적인 필요를 물질로 대체하려는 중독증에서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