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

박승호 목사 / 시139: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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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이 나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인생이 회복된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우리 신앙의 방황도 멈추게 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하셨다. 좋은 배필을 허락하시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위탁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대사로써 굉장한 존재이다. 엄청난 권리를 가지고 출발한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여 타락했다. 이 일로 축복의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 죄와 저주에 매여 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부활하시어 승천하시므로 영광스런 지위와 권세가 회복되게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실 일은 다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낮은 자존감으로 자기를 비하한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십자가의 구속을 받아들인 후에도 자신을 망쳐지고 불완전하고 가치없는 존재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대행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다. 자유와 확신 속에 행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이해해 한다.
본문 시편 139편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Ⅰ.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작품으로 창조된 나
13절“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우연이란 것이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 내 장기의 모든 것까지 창조하셨다. 나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계획하시고 출발케 하셨다. 그러므로 부모가 선생님이, 친구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인정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은 사람을 물질로만 평가한다. 사람을 화학성분으로 분해해 보면 칼슘, 인산, 나트륨 마그네슘, 구리, 등의 화학물질과 산소 탄소, 질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물질들을 현시가로 환산하면 만원어치도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인간을 동물과 비교해서도 결코 강한 존재가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생후 일 년이면 다 자라서 독립한다. 그러나 인간은 수십 년을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할만큼 연약하다. 이렇게 사람의 가치를 육체에만 둔다면 참으로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손수 지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 존재의 가치가 있다. 내 영혼의 가치를 갖지 못한 사람은 물질적인 가치 , 동물적인 가치밖에 알 수 없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
[고후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나 재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모신 데에 있다.
[롬3: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배후가 있다. 나를 책임져 주는 분,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 이렇게 믿는 것이 신앙이다.
[고전6: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사셨다. 나의 값어치는 예수님짜리이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예수님을 주고 바꾼 존재 이런 존재가 바로 나이다. 의복도 핸드메이드는 관리를 잘해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에 관리를 잘해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 섬기며 봉사하는 일 등을 통해 우리 영혼의 상태를 잘 점검해야만 한다. 작품은 작가를 드러낸다. 우리도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영성관리이다.

Ⅱ.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가? -나의 자아상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신묘막측하게 지으셨다고 한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 의미없이 어떤 일을 행하시지 않으신다. 필요를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존재, 이것이 인간의 가치이며 유일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여럿 중에 하나인 상품이 아니며 유일한 작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교될 수 없다.
서로 다를 뿐 비교할 수 없고 독특하며 유일무이한 존재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볼 때 비교하지 않고 다른 점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 “넌 독특해” “이런 발상은 너밖에 없을 거야!” 이런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
칭찬을 듣는 훈련도 해야 한다. 누군가 나를 칭찬할 때 “앞으로 실망하실 거예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라는 말보다 “그렇게 평가해 주시니 기쁩니다”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용기가 납니다.” 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자아를 왜곡되게 하는 거짓된 이론들이 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1. 잘못된 교리
진화론-우연을 믿으며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믿는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간 스스로 감당해야 할 자유의지가 있는데 다 운명으로 우연으로 돌린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무가치하게 되었고 자살을 조장하고 안락사를 장려할만한 행동으로 생각한다. 이 진화론을 배우는 아이들이 낮은 자아상과 낮은 자존심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다 할 수 있겠는가?
2. 자기 거절감정.
살면서 당하는 경험들은 자신에 대한 개념(자아상)을 형성한다. 만약 우리의 삶이 상처투성이고 부정적인 경험들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가치없는 존재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상처와 아픔들이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끌고 간다.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배우자에게 무시를 당하고 직장에서 고용주에게, 친척들에게도 인정을 못받는다면 이것이 우리 삶에서 거절감을 형성하는 요소들이 되고 어디를 가도 거절감에 싸여 살게 된다. 이런 상처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도 믿지를 못한다. 내가 누구인가 나를 거절한 사람들의 평가가 내가 아니다. 나를 만드신 분의 말씀하심을 들어야 한다.
3. 비교의식
비교의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결코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리고 항상 실패의 감정이 뒤따른다.
흔히 우리 부모들은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비교를 당하면 상대적인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상대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질병에 걸리게 된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싸우려 할 때 형들이 자신을 무시했지만, 형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만군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워 이겼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감이다. 상황이 어려운 게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신감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내가 비교당하지 말아야 하듯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말로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된다.
[마12:36-3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가 한 말에 대한 심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함부로 막말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정체감이다.
Ⅲ.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사명
16절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나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목적을 가지고 창조된 존재이다. 그리고 내게 하나님은 분명한 사명을 주셨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사명을 말한다. 나의 인생이 시작되기 전에 주님이 나를 보셨다. 나는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만났을 때 너는 아브라함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가능성을 아브라함 자신은 몰랐을 때이다.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다. 그 이름대로 그는 성장해 갔다. 시몬을 베드로로 부르신 주님의 뜻대로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의 일을 잘 감당해 갔다.
우리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일이다. 하나님의 대행자,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일이다.
새들백교회 이야기이다. 년 초에 직분자들에게 서약서를 받는다고 한다.
1)담임목사의 리더십에 절대 복종하겠는가?
2)성도들끼리, 이웃끼리 남을 참소하는 말을 하지 않겠는가?
이 두 항목에 예스라고 싸인을 해야 직분자로 인정을 한다고 한다.
생명의 부양자로 일년 동안 교회를 섬기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조엘]이라는 책의 주인공 조엘이라는 청년은 화상으로 온 외모가 다 망가져 있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에 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대사로서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 조엘이 아름다운 것은 외모 때문인가? 사람의 존재는 사명을 포함하고 있다. 조엘은 성경의 요엘의 이름이다. 요엘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이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이 땅에 보내주실 때 이미 사명을 주셔서 보내신 것이다. 나의 사명은 조엘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여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