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광야 40년의 훈련을 이수하고 나서의 그의 모습은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칭함을 받게 된다. 그러했기에 40년간 지도자로서 백성들로 인해 겪은 많은 난관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보살피고 섬길 수 있었다. 지도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쉽게 정죄하고 미워하면 영혼을 품는 생명의 부양자가 될 수 없다. 결국 훈련이란 사람을 품는 훈련이다. 즉 사람을 이해하는 훈련이며 오래도록 그 사람의 변화를 기다려 주는 인격의 사람이 되는 것이 훈련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이런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훈련으로 인도하신다. 이 훈련을 통과면서 하나님의 이 마음에 부합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쓰시고 세워주신다. 오늘 본문 시편의 다윗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타낸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했는지 그의 생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자.
Ⅰ. 다윗의 생애는 하나님을 높이는 삶이었다. -찬양의 삶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삼상16: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항상 칼을 들고 있던 사울은 결국 자신이 들고 다니던 칼로 자신의 생명을 죽였다. 이와는 반대로 늘 수금을 들고 다니며 찬양하던 다윗은 사울이 악신에 시달릴 때 악신을 쫒았으며 많은 시편을 기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두 사람의 결국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목숨의 위협을 받는 위기의 연속 속에서도 다윗은 기도와 찬송으로 그 모든 위험을 피하고 승리하였다. 좋을 때 찬양할 수 있지만, 과연 고난 중에서 누가 찬양할 수 있는가? 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가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다윗을 살렸고 하나님이 다윗을 쓰시는 이유이다.
지금 나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예물, 사람을 살리는 일, 생명을 주는 일, 평화를 주며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생명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가?. 죽이는 일을 하는 사탄을 닮지 말고 살리는 일, 창조의 일을 하신 우리 주님을 본받아 살도록 하자.
Ⅱ. 다윗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목적된 삶
다윗은 왕이 되는 것이 그의 인생 목적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사울도, 압살롬도 자신의 손으로 얼마든지 처치할 수 있었다. 만약 다윗이 왕위를 위해서 자신의 기회를 썻더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고도 왕위를 속히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굴복하고자 하는 그의 충정 때문이었다.
다윗은 왕위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16: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의 상황에서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보신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여 고난을 헤쳐 나갔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삶이었다. 비록 실수하여 범죄했더라도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로 결단하며 흔들리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모습이다.
광야의 기간은 본인이 결정한다. 광야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사는 법은 하나님의 임재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에 충실하면 그 기간도 단축할 수 있고 또 즐겁게 그 길을 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우리 삶의 모든 좋은 결론은 고난을 통과하고서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목적일 때 고난은 능히 견딜 수 있는 훈련일 것이다.
Ⅲ.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시7:1]“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게 피하오니 나를 쫒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건져 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다윗은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나가서 싸워 승리하였다. 그는 새벽에 기도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 시편은 새벽을 깨우는 기도가 많다. 즉 다윗의 삶의 태도를 말해준다. 중대한 일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으며 첫시간을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릴 줄 아는 충성스런 사람이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다윗이다. 그의 생애가 얼마나 적이 많고 괴롭히는 대상이 많으면 그렇게 기도했겠는가? 고난의 세월동안 그는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한 날 한 날을 살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다.
그는 그의 위기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기도했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구한 것은 하나님자신이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드는 자세가 우리를 변화시킨다.
Ⅳ. 다윗은 그리스도를 산 사람이었다.
[시22:1-2]“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의 이고백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르짖던 부르짖음이다. 그는 일찍이 예수님의 고난을 그의 입으로 묘사하는 고백의 시를 지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대적에 의해 모욕을 당하며 뼈가 어그러지며 마음이 녹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다윗의 고난이 예수님의 고난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윗의 삶은 예수님을 보여 주는 삶이다. 베드로는 다윗의 삶을 가리켜
[사도행전2:30]“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이 되고 있는가? 수치와 모욕을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해를 입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여 구원하시길 기다릴 수 있는가? 다윗이 보여주는 삶을 오늘 우리가 살아서 그리스도를 내 몸에 드러낸다고 하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보여 주는 삶으로 초청 받고 있다. 당신의 응답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