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예배의 능력 」
삼하24:18-25 박승호 목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위의 모든 나라보다 강한 나라가 되어 있을 때 다윗은 요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구조사, 정확히 말하면 병력을 조사하였다. 이 일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인구조사를 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조사를 한 동기가 문제였다. 다윗은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던 왕이었다. [삼상17: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러나 통치 말년에 그 마음이 해이해지고 교만해져서 이제 다윗왕국의 힘을 과시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다윗에게 진노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보시고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항상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우리가 매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종교예식이 아니라 예배의 예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진정한 만남은 마음이 서로 오고갈 때 이루어진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받게되었을 때, 예배를 회복함으로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이다. 이 시간 다윗의 예배를 통해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이며, 이 시대가 잃어가고 있는 예배를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예배시간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자..
Ⅰ. 진정한 예배는 교만, 자기 의(義)를 버려야 한다.
[계: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 시대의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처럼 풍요를 누리고 외친다. 하지만, 주님께서 지적하셨듯 영적으로 가난한 시대이며,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점에서 예배의 위기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A. W 토저는 “나를 드러내며 나를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 교회의 문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기념비를 세우며 교만했던 사울왕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바벨탑사건은 자기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고자 함으로 재앙을 불렀던 사건이다. 예루살렘교회는 성령이 충만하여 부흥했지만,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는 사역에 눈을 뜨지 못하고 모여 있었다. 이 때 예루살렘교회를 하나님께서 핍박을 통해 흩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지 못하고 인간 스스로 자족하는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는 예배를 원하신다. 예배는 쇼가 아니며 자신의 위로를 위함만도 아니다. 언제나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못하고 스스로 자족했던 교만이 동기가 된 사건이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교만을 살피고 겸손하게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Ⅱ. 진정한 예배는 재앙이 내릴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10/“다윗이 인구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감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다윗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다. 잘못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이다. 회개하면 회복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히12:17]“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놓침으로 영영 돌이키지 못했다. 다윗의 범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지적할 때마다 즉각 회개하여 돌이킴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열매를 맺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게 된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깨달았을 때 즉각 회개하는 일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의 기능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실 때 회개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재앙을 면하려면 회개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
Ⅲ. 진정한 예배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종교성 안에는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최고의 것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많은 부분이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비롯되었고 타종교의 의식이나 일반인의 의식 가운데도 이 정신이 녹아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열매와 첫아들을 드리는 정신에서 첫시간을 중시하고, 피를 드리는 의식에서 비롯된 붉은색의 효험을 믿는 등의 관습은 구약의 제사에서 따온 것들이다.
원래 예배는 영어로 WORSHIP인데 WORTH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예배드리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로버트 베일리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경외와 존경심으로 압도되는 감각을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올바르게 예배할 수 없다” 하였다.
밥 웨버는 “예배는 동사이다” 예배는 관찰이 아니라 참여이다. 예배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구약의 제사는 희생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흠없고 완전한 제물을 바쳐야 했다. 신약에서는 우리 자신이 산제물이 되어야 하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신이 예배에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준비되어야 한다. 헌금, 옷차림, 시간, 어느 것 하나 준비되지 않아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은 행위이기 보다 마음의 자세이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컨디션까지 조절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일이야 말로 예배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이다.
Ⅳ.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는 예배여야 한다.
18/“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25/“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하매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한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뜻하고 화목제는 관계회복을 뜻한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의 차이는 자기식의 예배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드린 예배의 차이이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마리아와 책망을 들은 마르다의 차이가 무엇인가? 일의 종류에 대한 차이가 아니다. 당시의 예수님에게는 십자가를 앞둔 주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배는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드려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목말라하는 거기에 진정한 예배가 있다. [시편130:5-6]“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또한 예배는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찬양하는 일이다. [사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마음으로 찬양하는 일이야말로 예배의 본질이다. 단순히 입술로 하는 노래가 찬양이 아니다. 날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마음에 넘쳐서 그 분을 높여드리는 것이 찬양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해야 할 일도 찬양이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멈추지 않았기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만 있다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을 막아야 한다. 지각하는 습관, 주차협조, 복장, 핸드폰 끄기, 차례로 앉기, 어린아이의 통제 등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Ⅴ. 진정한 예배는 재앙을 멈추게 한다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다윗에게 내린 여호와의 진노는 다윗에게 더 큰 진노를 막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사랑하셨다. 다윗이 받을 더 큰 재앙을 막으시려고 선지자 갓을 보내신다. 그리고 재앙을 선택하게 하심으로 다윗을 일일이 인도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세상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때 자칫 영적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성령님은 우리가 범죄 할 때 선지자로 오셔서 우리를 책망하신다. 그 때 돌이키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잃게 되므로 때로는 회복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아프게 때리시기도 하신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징계이다. 다윗이 즉각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졌을 때 그 내리려던 재앙을 멈추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돌이킴으로 재앙을 멈추게 하는 예배의 능력을 힘입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