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그 성에 가고 싶은 사람들

정장복 목사 / 히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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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다. 누구나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 본문은 나그네의 의식이 투철하여 돌아갈 본향을 사모하여 살았던 선조들의 삶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하나님되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땅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본문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자.

Ⅰ. 하나님은 그 성에 들어올 사람들은 정확한 목표를 세우시기를 원하신다.
14-15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일반적으로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실패하는 이유는 목표가 없었고 목표가 없으면 방종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도 나름대로 목표는 있다. 그런데 그 목표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없어질 목표들이다.
미국에 이민 온 어떤 사람이 도너츠가계를 하기 까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에게 전도하는 목사님에게 자신이 한 가지 더 목표를 이루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그 목표는 집을 사는 것인데 3년쯤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2년 후에 큰 병으로 죽게 되었다. 이처럼 세상적인 목표는 건강을 잃으면 소용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목표를 가지되 영원한 목표,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목표여야 한다. 인생에게 내일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목표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하늘나라였다. 그것을 ‘본향’이라고 한다. 이 믿음의 목표가 있었기에 고난과 시련에도 한결같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성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준엄한 명령을 주신다. [고전10:31]“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늘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원한 목표가 있는가?

Ⅱ. 하나님은 그 성에 들어 올 사람들의 기록을 소중히 여기신다.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한다. 믿음의 가치관을 따라 살았다는 말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본향’ 때문에 추호의 흔들림 없이 믿음의 길을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이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으며 후대에 되어질 것을 믿기에 오히려 환영했다고 한다. 이것이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기록이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의 삶의 기록도 남게 된다. 역사는 역사적 인물들을 평가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 사람이 누구이며 나라를 해롭게 한 사람의 발자취가 어떠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삶의 기록도 후대의 뇌리 속에 영원히 박히는 기록이 된다. 자녀는 부모의 삶의 모습을 기억한다. 부모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은 부모를 그리워하며 본받으려 한다. 그러나 자녀가 기억하기에 아픈 추억을 가지게 한 부모도 있다.
성경에도 나의 신앙의 기록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계20: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이름 밑에 남겨질 기록을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

Ⅲ. 하나님은 그 성에 들어 갈 사람들은 언제나 그 성의 주인이 되신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신다.
[사55: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영어에는 Listening이라는 말과 Hearing이란 말이 있다. 둘 다 듣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Hearing은 그저 들려지는 것을 말을 가리키고, Listening이라는 말은 내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Listening 즉 청종을 뜻한다. 경청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 나그네의 길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성에 들어가기까지의 안내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한결같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는데 실패의 원인이 있다.
오늘도 외롭게 살아가는 인생 나그네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14: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인생의 짐이 무거워 좌절하는 사람에게는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명을 다하다가 낙심하는 자에게 [갈6:9]“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적재적소에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내 교회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음성을 따라서 순종하고 약속된 결실을 비록 보지 못했어도 멀리서 보고 믿으며 나그네의 길을 살다가 떠났다. 우리 주님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본을 보여 주셨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그 삶의 목표, 그 기록, 그 순종은 언제나 우리 앞에 보여지고 있다.
우리의 부끄러운 삶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우리의 하나님되심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 거기다가 우리가 거할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시고 계신다. 이 얼마나 송구하고 복된 말씀인가?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 성에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기를 바라신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 모두는 일어서자. 그곳을 향해 우리의 행진을 흔들림 없이 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기록을 쌓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자.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