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는 땅, 밟는 땅

박승호 목사 / 수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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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떤 사람이 꿈에서 죽었는데 저승사자가 나타나 천당과 지옥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두 군데를 비교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천당을 보니까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만 하고 영 따분해 보였다. 그런데 지옥을 보니까 디스코장에서 늘씬한 아가씨가 춤을 추고 있고 사람들이 몹시 흥겨워보였다. 속으로 나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갔다. 그런데 예전에 보았던 그 지옥이 아니라 몹시 뜨겁고 고통스런 곳이었다. 그래서 저승사자에게 왜 그 때 보여준 것이랑 다르냐고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저승사자가 말하길 음 그건 홍보용이었어. 라고 하더란다.
물론 이것은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마다 체질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할 때 좋아 보이는대로 살게 된다는 말이다. 늘 편안함과 재미만 찾는 사람이었기에 재미있어 보이는 지옥을 선택한 것이다. 천당역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천당이 좋아 보이고 천당에 갈 체질이 된 사람이 가는 곳이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삶이 약속된 가나안(영적의미의 천국)을 누가 누릴 수 있는가? 가나안이 좋아 보이고 그래서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체질로 바뀌어야 가나안을 누린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바라는 사람은 가나안을 살 수 있는 삶의 스타일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가나안을 누릴 수 있는가? 가나안 정복의 원칙이 있다. 가나안에 대한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

Ⅰ. 신1:22 비젼을 가지라.
[신1:22]“...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민13;17-20]“모세가 ..너희는 남방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 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
[수18:2-6]“......그 남은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곳 내게로 가져올찌니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으리라”

가나안을 정탐하는 목적은 전략을 위해서였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곳이 민13:17-20이다. 수18:2-6절에서는 아직 기업을 얻지 못한 7지파 중에서 3사람씩 뽑아 정탐하게 한 다음 얻고 싶은 땅을 그려오라고 한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가나안이 이스라엘 모두에게 허락되었지만, 구체적인 그림을 가진 사람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복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다. 그러나 복에 대한 그림을 가진 사람만이 그 복을 성취하게 된다.
내 인생의 그림,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 만날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꿈이 없는 사람은 기업이 없다. 꿈이 없으면 계획이 없고 계획이 없으면 성취가 없고 성취가 없으면 만족이 없다.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사람은 목적이 없기 때문에 본능에 의해서 살게 된다. 이백만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가나안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없어서 원망하다가 죽어갔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누리고자 하는 자는
1.거룩한 비젼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비전이 있는 자-그림을 그리는 자- 자신의 갈 길을 미리 보고 그 일을 미리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비전의 사람이다. 비전은 약속을 본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유대인들은 비전으로 가지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그것이다. 꿈은 세대를 거쳐서 전수된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어 비전이 공유되고 있다. 거룩한 비젼은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고 나를 조성하신 분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다.
2. 실현할 수 있는계획이 있어야 한다.
갈망이 있어도 그 갈망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이 없으면 뜬구름이 되고 만다. 우리 교회의 천국을 사는 33전략. 데일리 카드는 지금부터 천국을 살 수 있는 계획표이다.
3. 잘 진행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계획대로 잘 가고 있는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생산적인 길이 어디에 있는지 평가를 통해서 점검해야만 한다.
4. 성령의 도우심, 격려그룹이 있어야 한다.
목적중심이 되면 가슴이 메마르게 된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성령님의 공급과 지지가 있어야 비전을 향해 갈 수 있다. 심령의 부흥,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뜨거운 열기와 의지를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격려와 지지의 동반자, 교제그룹이 있어야 한다.
5. 끝까지 계속 그 길을 가야 한다.
이스라엘은 분명한 지도가 없었다. 막연히 잘살아 보자. 그것이 그들의 지도였다. 잘먹고 잘살고자 하는 땅의 비전이 하나님의 비전이 아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없는 사람은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본능에 의해서 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은 하나님 만나기 전에 꿈꾸던 그런 삶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있어야 한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Ⅱ. 14:6-12 약속을 붙잡고 기업을 달라고 주장함
1. 약속을 신뢰함
갈렙은 모세로부터 받은 가나안의 기업이 45년이 지나도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제 그 기업에 대한 주장을 여호수아에게 한다. 갈렙은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의 주장은 85세의 노인의 주장이 아니라 젊은이의 주장과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인생은 도전자의 몫이다”라고 했다. 호텔왕 콘라도 힐튼의 말이다.
2. 고난을 각오함.
세 가지 삶의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첫째, 독수리형의 삶의 스타일이다. 독수리는 멀리 날고 멀리 바라보고 목표에 도전하는 새이다. 독수리형의 사람은 도전적이고 용기있고 진취적인 성격의 사람을 말한다. 즉,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삶이 아니다.
[사40:30-31]“소년이라도 곤비하며...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둘째, 황소같은 삶의 스타일이다. 소는 성실하고 열심히 있다. 그러나 황소의 약점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아중심적인 성실이고 열정이다. 셋째, 고무풍선같은 삶의 스타일이다. 풍선은 볼륨을 뛰운다. 찬란하고 멋지다. 그러나 속이 비어있다. 생각없이 환경에 따라 변해가는 삶을 말한다. 목표를 가지기 위해서도 이루기 위해서도 앞을 내다보고 도전하는 독수리의 삶의 스타일을 배워야 한다.
야구의 신화적인 기록의 소유자 베이브 루수가 714번째 홈런을 기록한 날 한 신문기자는 그의 1,330번의 스트라이크 아웃의 기록도 함께 실었다. 실패없이 고난없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생의 야망, 목적을 향한 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3. 소망의 언어사용해야 한다.
“오늘 날 내가 85세로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험악한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하고 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같이 출발했던 사람이다. 나름대로 불만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수아에게 불평을 말하지 않고, 소망의 약속을 말했다. 우리가 가나안을 살기 원한다면 원망 불평하는 언어를 조심해야 한다.
SOL 지도자 반에서 선포문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언어를 훈련하는 일이다.
한 성도의 선포문이다. “나는 생명의 부양자이다. 나는 어떠한 말에도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다. 나의 퇴행성 관절염은 깨끗하게 나을 것이다. 나는 믿음 좋은 생의 동반자를 만날 것이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다. 나의 아들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나는 마침내 거부가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내 인생에 대한 밑그림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선포하라. 혹시 불평이 있어도 희망의 말로 바꾸라.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라.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

Ⅲ. 1:1-6 발바닥으로 밟으라.
[수1:2-3]“...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
[신11:24]“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
[수14:9]“..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발다닥으로 밟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영역표시이다. 곰들도 영역표시를 한다. 땅을 밟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표시이다.
밟는 행위란
1. 예배생활이다.
하루의 첫시간, 한주간의 첫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먼저 드린다. 예배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2. 기도생활이다.-분깃을 얻기 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불신자 전도라는 목회의 방향전환을 선언했다. 그래서 먼저 24, 365기도를 하려고 한다. 24시간, 365일 기도의 불을 끄지 않으려고 한다. 그 목표를 위해서 전교인이 다 참여하는 것이다. 기도하면 그 땅은 우리가 얻는 것이다.
3. 구체적인 언어생활-선포하라. 찬양하는 삶.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찬양하는 것은 선언하는 것이다. 찬양함으로써 악한 영들을 우리가 좆아 낼 것이다.
4. 영역을 확인하고 전략을 세우라. -내가 속한 땅을 확인하는 땅밟기를 한다. 영역표시를 하고 오는 것이다. 일어나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 땅을 밟고 온 10사람은 부정적인 언어 때문에 죽었고 그 중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넘치는 복을 주셨다. 약속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라. 주는 땅이 우리의 밟는 땅이 될 것이고 밟는 땅은 우리의 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