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약속을 말하며 사는 사람들

박승호 목사 / 민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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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참 병장이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을 찾았다. “어느 대학 나왔냐?” “K대학입니다.” “S대학 나온 사람 없나?” “네 접니다.” “피아노 잘 다루나?” “네 그렇습니다.” “그래 너 이리 와서 피아노 좀 옮겨라.” 군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것은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것은 애굽에서 나오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천당 가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으로서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Ⅰ. 정탐꾼들의 사명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2년이 되던 해의 일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해서 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어서 보낸다. 그들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민13:17-20]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남방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 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담대하라. 또 그 땅과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라”
1)그 땅 거민의 강약 다소 2)땅의 호불호 3)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4)토지의 후박 5)수목의 유무 6)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는 것 이것이 12정탐꾼의 사명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약속을 주고 받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신뢰하는 마음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표로 삼는 가나안 땅은 여호와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다. 그러므로 가나안은 어떤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받게 될 선물이다. 그런데 열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다. 동일한 조건 속에서 정탐했지만, 12명 중에서 2명과 10명은 서로 상반된 결론을 내린다. 무엇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게 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차이였다.

Ⅱ. 정탐꾼들의 보고
1)부정적인 보고자들- [민13:28]“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과장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가나안 사람들은 키가 크고 장대했다.
[민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사실을 해석하는 일이다. 지금 열 명의 정탐꾼들은 보이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이고 진실이다. 그러나 사실이나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믿음이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사실이 흔들린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문제만을 보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작아보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낙자손에 비해 메뚜기 같다고 말한다. 문제가 커보이면 내가 메뚜기처럼 작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메뚜기 사고이다.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멸망으로 가는 과정은 이러하다.
1)보는 관점-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진행되는 상황, 현실만 본다. 현실만 보게 되면 가나안 원주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
2)사고의 전개-부정적인 결론부터 생각한다. 순종해보지도 않고 못할 것이다.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부정적인 사고의 결과- 결국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된다.
4)영향력-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함께 망해 간다. 이스라엘 전체가 이 보고에 흔들리게 된다. 심지어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지도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2)긍정적인 보고자들-[민13: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 그렇게 말하면 허황된 말이다. 갈렙이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다. 광야의 삶에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기적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가야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희망을 갖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생각은 바로 그 사람자체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바로 그가 어떤 사람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삶이 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본다면 그 사람은 대장부가 될 수 있지만, 믿음 없이 모든 사물이나 문제를 대하면 자신을 메뚜기로 생각하게 된다.
3)백성들의 반응-부정적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생각을 믿고 울며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민주주의의 약점은 궁중심리에 있다. 사실이 아니어도 다수가 되면 진실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문제는 커 보이고 자기가 메뚜기처럼 느껴지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을 때 의도적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주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믿음을 자꾸 선포해야 한다. 움츠려드는 자신을 향해 선포하고 들려주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소망을 말하고 약속을 선포해야 한다.
4) 하나님의 반응-
*긍정적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민14:24]“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좆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을 내 종이라고 불러 주신다. 온전히 따라왔다고 칭찬하신다. 그 땅으로 들이며 후손에게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 후에 그 약속대로 모두 성취되었다. 우리는 이런 약속을 축복을 전수되도록 해야 한다
*부정적인 보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민14:34]“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루가 일년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을 전환하는 일이 일년의 세월이 걸린다. 부정적인 말은 우리의 광야의 생활을 조정한다.
[신14:37]“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면서도 현실에 매인 사람들에게 진노하셨다. 40년의 기회를 주었어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 모두 비극으로 생애를 마감케 하셨다.

Ⅲ. 믿음은 관리해야 한다. 깊이 사고하라.
10명의 보고는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한 것이다. 2명의 보고자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해석이다. 사실만 본 사람과 사실 너머에 있는 소망까지 보는 차이점이다.
스님에게 빗을 팔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생각에 따라 파는 팔고 못팔고가 결정되었다. 못판다고 생각한 사람은 스님에게 빗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못팔았다. 판 사람은 빗을 팔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팔았다. 주지에게 빗을 대량주문을 받은 판매원이 있었는데 그는 절을 찾는 참배객에게 선물로 주도록 권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실을 바라보는 눈이 중요하다. 해석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화이다.
상황이 불가능 한 것이 관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이다.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보는 사람이 있다.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랜던은 “절망과 희망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너무나도 가깝다. 언제나 절망이란 놈은 희망 바로 뒤에서 따라 온다.”라고 했다. 희망을 선택하지 않으면 절망을 선택하게 된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부정적인 사람은 똑 같은 상황에서도 안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되는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믿음은 선물이다. 그러나 잘 관리해야 한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믿음은 환란을 통해 건강해지고 정결해지고 성장한다. 관리하지 않는 마음은 악한 것들이 와서 지배한다. 청소하지 않고 방문을 닫아두었다고 깨끗하게 있지 않다. 거기에 먼지가 쌓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가만히 두면 악한 것이 와서 지배한다.
모세와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의 대다수는 광야에서 망했다. 기적을 경험했지만, 다 망한 이유는 그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 관리이다.
[사행26:17-18]“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신 목적자체가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기업이다. 교회는 천당가기 위해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옆편의 강도가 교회를 다녀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다. 장자권의 축복,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셨고 또 오늘 우리를 부르셨다.
[신1:32-36]“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 하였도다......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는 땅을 내가 그와 그 자손에게 주리라”
가나안 땅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정탐꾼‘이라는 이름으로 테스트를 거친 후에 믿음을 저울질 하신 후에야 들어가게 하셨다. 약속과 성취 중간에 믿음이 있다. 믿음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그 땅을 보면 황량한 사막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땅을 보는 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바뀌어 진다.
우리 나라사람들의 성인병의 원인은 첫째, 불규칙한 식생활, 과음 과식, 둘째, 성격인데 다혈질의 조급한 성격, 말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 셋째, 나쁜 습관이라고 한다. 건강한 습관은 건강을 유지케 해주시지만 불건강한 습관은 건강을 해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의 습관대로 광야를 살았다. 애굽에서는 자기를 억압하는 지도자를 욕해주어야 애국자이고 욕을 많이 해야 의로운 사람이다. 그런 구조에서 400년간 살았다가 여전히 그 습관대로 지도자 모세를 대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 그들에게 모든 필요를 제공하시면서 40년을 기다려 주셨다. 그래도 그들은 모세를 대적하고 싸우고 욕하면서 40년을 보낸다.

Ⅳ.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며 사는 사람들
일중독, 알콜중독처럼. 부정적인 것만 생각하는 사람을 네가홀릭(부정적인 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말대로 된다는 사실이다.
말대로 되는 인생
우리가 사랑의 말을 하면 사랑을 받는 자가 된다.
우리가 비난의 말을 하면 비난을 받는 자가 된다.
우리가 축복의 말을 하면 축복을 받는 자가 된다.
우리가 저주의 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 말이 내게 들린대로 너희에게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못한다 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주님의 약속은 성취된다고 말하라. 불신자를 전도할 수 있다고 말하라. 나도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다. 나도 능력있는 사역자가 될 수 있다고 선포하라.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말고 약속을 말하라. 하나님이 더디 응답하셔도 무슨 일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말하라. 약속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