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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1:20-28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예수님의 ‘성육신’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심이니까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새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의 예루살렘에만 머물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한다고 하십니다. 20-21절
내가 붙잡고 있는 예루살렘이 무너져야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새 예루살렘이 목적지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곳은 바라보지 않고 모두 이 땅의 예루살렘만 붙잡고 있으니 안타까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에워싸일 것이고 에워싸이는 때를 당하거든 그 예루살렘에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나의 예루살렘이 흔들릴 때에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그것을 붙잡지 말고 눈을 들어 예수님의 재림을 기억하라. 그 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십니다(왕상20:28). 산은 크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시121편, 살전4:16-18, 계21:4).
2. (징조)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어나 머리를 들라’입니다. 28절
이 땅의 예루살렘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징조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징조를 보고 우리의 머리를 하나님을 향하여 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질서의 변동과 하늘의 변동이 있겠고,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한 징조가 날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재림의 예수님은 심판 주로 오시고 그것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더 많은 징조를 보여서라도 그날을 기억하게 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예루살렘으로 데려가고 싶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계1:7). 구원을 위하여 선택함을 받은 너는 부활에 합당한 사람으로 돌이키라고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향하여 회복하고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택하신 자들을 모으고 놓치지 않기 위해 이런 징조들이 보이면, 인자의 도래와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 나라에 적극 참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징조는 우리를 공포로 두려워 떨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 날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더 의지하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3.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합니다. 34-35절
그 날이 덫과 같이 뜻밖에 너희에게 임할 것이기에 방탕과 술취함, 향락에 몰두하거나 염려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스스로 돌아보며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삶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날이 덫과 같이 뜻밖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계속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하여 기도하며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6절) 우리 삶을 에워싸는 것이 있으면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나의 예루살렘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기에 놀라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이 땅에서만이 아니기에 더 본질적인 영원한 생명의 땅 예루살렘, 하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매이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땅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