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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1,21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하나님은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에게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사람은 잊어버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한 번도 잊어버리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시려고 일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열심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절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열심은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 언약의 시작은 아브라함 전에도 있었지만, 우리에게 언약으로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시작한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입니다(창12:1-3). “너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열심으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될 메시야를 보낼 것 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복을 받을 만해서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도록 하나님이 친히 그의 삶 가운데 동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도 언약하셨지만, 다윗과도 약속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7:12-13).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시 또 언약하며 다짐 했는데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다윗 때까지는 상당히 오랜 간격이 있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이 언약을 변개 하거나 잊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즉, 언약을 기억하시고 계속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어 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한 사람 족장이 민족이 되고 나라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열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한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다시 한번 더 예언을 통해 언약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사9:6-7). 그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하는 이 말씀이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서문이고, 눈물 나는 고백이고 아름다운 말씀의 선언이며 선포입니다.
2. 예수는 ‘왜 (성육신)하셨는가?’ 입니다. 21절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자기 백성’은 예수그리스도의 권위와 그 통치를 전인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고 다시 재림하시는 이 모든 권위를 인정하고 그 통치를 따르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요일5:1,6,7-8). 전인적이라는 것은 나의 전체적인 삶이 그의 통치를 나의 전 삶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자기 백성입니다. 이것은 믿을 만하고 저것은 믿을 수 없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의 삶이 성경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롬12:1). 내가 예수님의 백성이라면 성경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은 축복의 말씀뿐만 아니라, 하지 말라는 통제의 말씀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만하면 받아들이고 내가 불편한 것은 편리에 의해서 거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백성은 믿기만 하는 믿음이 아니고, 그 믿는 것대로 사는 자가 예수님의 ‘자기 백성’ 입니다.
3.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이 메시야를 기다렸는데도 못 알아보고 (거절)했는가? 21절
유대인들은 분명 메시야 열망 사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못 알아보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그들 마음에 품어졌고 분명히 기다림의 대상이었는데, 그들은 왜 못 알아보고 거절했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 상(想)이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메시야 상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메시야 그리고 로마의 압제를 해결해 줄 메시야 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힘도 능력도 없어 보이는 예수를 거절한 것입니다(사53:2,5-6, 마20:28).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으로 보낸 메시야의 사명과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메시야의 사명이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들의 죄를 구원할 자을 기다렸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으로 보내시는 그 예수를 알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으로 다시 오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려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탄의 복된 빛을 우리의 평생에 노래하고 찬양하는 예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메리 크리스 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