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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4-26 “믿음에서 믿음으로”
“죄인들, 세리들은 하나님의 친구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친구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을 너의 친구들로 만들어야 돼”라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을 듣고 비웃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14절
바리새인들은 모든 것을 듣고 왜 비웃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개념에 대하여 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부자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가난한 자들, 홈리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벌 받고 저주받아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근거에 의하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은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 벌 받아 가난하게 된 것이고 거지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버린 저들에게 나의 재물을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판단하여 가난한 자들과 먹지도 않고 함께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이해로 세상을 해석하고 사회구조를 판단하니 얼마나 냉혹하고 무서운 사상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혼자만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최종 평가를 어떻게 해요?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좋아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돈이 좋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말씀하십니다. 17절
신약시대인 예수님 안에서 율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완성되고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모델이 되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준 대로 우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의 의미이고 율법이 예수님 안에서 더 가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는 자의 물질관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싶으신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예수님은 율법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실현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3.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19-21절
16장에는 부자 두 명이 나옵니다. 앞의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대로 빌려주는 부자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 부자의 대문 앞에 나사로가 버려진 채 있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입니다. 비유에 나사로가 등장한 것은 한 영혼에 대한 귀중함을 드러내며 그 이름이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라는 뜻처럼 사회적 약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사로, 사회적 약자들이 누구에게 도움받기를 원하셔요? 그 부자에게 도움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에게 허락되었던 많은 물질들이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예수님은 부요 하신 이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부요를 가지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가난한 자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부자인 바리새인에게는 율법도 주셨고 물질도 주셨지만 그들은 잘못된 율법관으로 스스로 높아졌고 오히려 이 땅에 더 많은 가난한 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분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