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4
2021-02-07
2021-01-31
2021-01-24
2021-01-17
2021-01-10
2021-01-03
2020-12-31
2020-12-27
2020-12-25
2020-12-20
2020-12-13
2020-12-06
2020-11-29
2020-11-22
2020-11-20
2020-11-15
2020-11-08
2020-11-01
2020-10-25
눅 17:1-10 “믿음의 능력”
예수님은 선포하신 복음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 피로 맺은 공동체, 대속의 공동체로 누구도 실족하지 않고 다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기를 원하십니다.
1. “실족하게 하지 말라”라고 하신 이 작은 자는 누구인가? 2절
이 작은 자는 말 그대로 공동체 안의 어린아이일 수 있습니다. 아직 초신자인 제자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복음이 전파된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삶으로 혹은 말로 지적하고 비판하고 고통을 주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 어렵네” 하며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가지 못하게 하고 복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사람이 그렇게 실족하라고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한 것이 아니고 그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의 삶은 늘 주의하여 피차간에 덕을 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롬14:9). 예수님은 예수 안의 공동체에게 부탁합니다. 늘 스스로 조심하고 만일 형제가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거든 형제가 모르고 한 것이기에 그가 회개하고 미안해 하며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100마리 양이 다 지켜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과 ‘하루에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에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2. 믿음을 더 해 주세요. 5절
사도들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한 “믿음을 더 주세요”는 믿음을 더 주셔야 가능하지 지금은 불가능 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루에 일곱이나 용서하는 것은 마치 큰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기는 일처럼 불가능한 일이지만 너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겨자씨만큼 작아도 그 믿음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커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작아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너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용서는 인간의 본질상 가능하지 않지만, 너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질이 바르다면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롬1:17). 제자는 믿음이 있기에 공동체 안에서 용서하고, 용서하는 일을 할 수 있고 해야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고 용서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3. 주님은 왜 문둥병자로 비유하는가? 11-19절
그 당시 문둥병은 사람들에게 버려진 존재입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문둥병은 죄로 인해서 저주 받고 벌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존재가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은 돌아와 엎드려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문둥병자가 고침 받을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고쳐졌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감사하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진 것을 ‘믿음’이라고 기록합니다. 즉, 이러한 겨자씨만한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공동체 안에서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고도 감사하며 엎드려지는 믿음이 없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감사하며 엎드려지는 믿음이 있어야 용서가 가능한 것입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피값으로 세운 공동체에 대가를 지불하고 들어온 사람이 없기에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십자가의 피로 만들어진 대속의 공동체는 용서할 힘이 있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