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삭개오 처럼

김병진 목사 /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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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1-10 “삭개오처럼

 

삭개오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지만 아직 영생 안으로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을 영생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해 주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 앞으로 달려가는 삭개오. 3-4

삭개오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전통적인 유대인으로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하나님을 알면서도 세리장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키가 작고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삭개오는 정말 예수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삭개오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무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고 있는 삭개오에게 갑자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름으로부터 이루어진 예수님의 주권적 의지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알게 되는 만남입니다(1:45-49)

 

2.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의 모습. 8

전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 집으로 모신 삭개오는 일어서서 스스로의 결단을 고백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은 네 갑절로 갚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고백은 놀라운 결단입니다. 삭개오가 이렇게 고백하고 결단하는 것은 실제로 가난한 자들에게 세금 징수를 필요 이상으로 했고 누군가의 것을 속여 착복한 것이 있기 때문에 갚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죄를 스스로 고백하며 회개합니다(6:5,5:7,22:1,삼하12:6). 예수님을 만나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도 변하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다.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회개는 죄에 대한 단순한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적인 행동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구원은 단지 존재를 구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함으로 동질성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협력하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합니다. 18장에서 그 청년은 자기의 노력으로 안 되니까 근심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자기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의 능력이 그를 자발적으로 결단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능력이요 구원의 능력입니다.

 

3. 이제 삭개오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9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는 말씀은 그동안 삭개오가 공동체로부터 소외되고 배타적인 대접을 받아왔는데 이제 삭개오를 공동체로 복귀시켜 당당하게 한 형제를 살아가도록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삭개오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삭개오가 참된 믿음의 소유자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여 함이니라이 말씀은 존재적 구원만이 아니라 실제적 구원 즉 소외되고 삐뚤어진 인간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복귀시켜 당당하고 품위 있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 만나고 복음을 만나면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5:31-32). 삭개오의 집에 오늘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자기만 바라보고 혼자 살던 사람이 예수님 만나고 자기가 꽉 쥐고 있던 것을 놓았기 때문에 이제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 맘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함께 살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나라로 가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