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내게 주신 이 은혜들을 무엇으로 보답할꼬?

박승호목사 / 시 1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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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진화론이 과학이 아님이 밝혀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많다. 인류의 출발이 창조냐 진화냐하는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믿느냐하는 것은 삶의 중요한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삶의 방향은 인류의 출발에 대한 믿음과 관계가 있음을 말한다.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4가지 결정론이 있다. 1)생물학적 유전학적 결정론- 부모의 양육패턴이 우리를 결정했다는 이론이다. 2)심리학적 정서적 결정론-부모의 교육, 정서적 영향이 현재의 나를 결정했다는 이론이다. 3)환경적 결정론-부모, 형제, 친구, 스승 등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이 우리를 결정했다고 믿는다. 4)영적인 결정론- 악한영들이 나를 결정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위의 이론의 특징들은 모두 나를 형성한 원인이 나 자신이나 나의 자유의지에 있지 않고 타인이나 환경에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간됨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론은 인간의 인간됨을 포기하는 선언이 된다.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환경을 초월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주도적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자신의 사람됨을 타인이나 환경에 돌릴 수 없도록 하셨다.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짐승의 삶을 살것이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짐승의 삶이란 본능과 충동, 습관에 의해서 사는 삶을 말하고 인간의 삶이란 생각하며 선택하는 삶을 말한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지도자들의 삶을 살펴보아도 그들이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 환경을 극복함으로서 하나님의 손에 쓰임을 받은 사람들이다. 요셉, 모세, 다윗 등 이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또 하나 생각할 문제는 오늘 날 이론으로는 창조를 믿으면서 행동은 진화론자처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려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주도성을 개발하고 훈련해야 한다.

Ⅰ. 뜻을 가지고 나를 선택하시고 인도하셨다.
.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은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놀라운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 삶의 가치를 이만큼 높이는 말이 더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대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 지금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존재로서 하나님의 대행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 나의 얼굴이 되어 달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대행자로서 서게 하려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혹독한 교육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버지의 의도를 아는 아들은 그 과정을 참아낸다. 아버지의 엄격함으로 인해 정서적인 상처는 있지만, 그 의도를 알기에 감사하게 된다. 자녀를 돕지 않는 부모는 없다. 세상의 부모도 우리를 돌보는데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이랴! 때로 우리를 고난으로 낮추셔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다. 고난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기 위함이다. 그 분은 뜻을 가지고 우리를 선택하셨으며 지금도 인도하고 계신다.

Ⅱ. 목적을 들려주심- 사명/ 음성을 들으라
[사43:4-6]“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
[출3: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요셉을 선택하심은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모세를 부르신 목적은 이스라엘백성을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동일하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구속사의 일을 맡기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 즉 사명을 깨달을 수 있는가? 설교 중에 기도 중에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실 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부르셨다.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우리의 양심, 환경 등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맞는 일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한다. 기도는 대화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전달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린다. 성숙한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또 우리가 하나님께 듣고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오늘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로 침묵하며 기다려야 한다.

Ⅲ. 약점이 있어도 버리지 않으시고 훈련시켜 쓰시는 하나님
[사43: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지렁이 같은 야곱이었다. 야곱의 인간됨의 약점을 말한다. 그의 삶이 그렇게 지저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쓰시기 원하셨다. 그를 쓰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물가운데와 불가운데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그를 물가운데서도 건너내시고 불가운데서도 건저내셨다. 야곱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변화되었다.
우리에게 야곱같은 약점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신다. 야곱을 변화시키셨던 것처럼 우리를 변화시켜서 쓰신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그분의 사랑은 진실하고 끈질기다.
[사49:16]“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수해도 다시 기회를 주시며, 아픔이 있어도 부르심 앞에 정직히 응답하는 사람을 쓰신다. 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변화되는 우리를 기대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신다.